낙망해서는 못 가는 복귀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4권 PDF전문보기

낙망해서는 못 가는 복귀의 길

오늘날 고마운 것은 이런 복귀 천국을 바라보는 이때에 있어서, 요 시대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밟는 흙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자라는 마을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외치게 될 때 내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복이 있구나, 내가 마시는 물에 복이 있구나, 내가 잠자는 땅에 복이 있구나, 아무리 바윗돌이라도 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나는 복을 전해 주기에 바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더구나 불쌍한 이 민족 삼천만을 위해서 통곡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이 민족을 위해서 절대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가시니 여러분도 또 가겠어요? 「예」 갈 자신이 있어요? 「예」가는 길이 어렵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우리 부모가 찾아올 때도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그런 자리예요. 형제가 와서 '야 동생아, 오빠' 하고 부르더라도…. 처자가 와서 애절히 사정해도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친구가 와서 자기의 사정을 말하게 될 때 아는 척, 모르는 척해야 될 때도 있었어요. 인간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처절한 그런 사정이 많았어요. 하늘같이 믿던 사람 앞에 자기의 소신을 말하게 될 때 배척하는 그런 억울한 자리에도 있었어요. 하늘이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고자 할 때, 내 정성 백 배 더해 주기를 바라서 기도한 후에 눈물 흘리며 발길로, 왼발로 차 버린 때도 있었어요. 처량하다면 인간사에 없는 처량한 것이요, 힘들다면 힘든 길이었어요.

가정에서 안 되니 광야에서 그 놀음 해야 되고, 광야에서 그 놀음이 안 되면 산꼭대기에서 그 놀음해야 되겠고, 산꼭대기에서 안 되면 이방을 찾아가야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이스라엘 천국을 바라보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예수를 죽이고 난 후에 이스라엘 선민권이 이방으로 옮길 줄을 누가 알았어요?

한많은 복귀의 길 이게 우리 아버지의 남기신 길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아들딸이라는 혈족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아버지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되고, 그 아버지가 머물 때 나도 머물러야 할 운명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 광야에서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바라보고 따라가듯이, 모세 실체는 못 보더라도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보고라도 따라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안 따라가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는 거예요. 독수리밥이 돼요.

여러분 앞에 선두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도한 내 자신이 벅차요. 힘에 벅찰 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갈 수 없는 길이예요. 여러분이 말을 듣고, 여러분이 순종하고, 여러분이 고분고분 따라오는 여기에는 갖은 화살이 많아요. 사탄의 갖은 화살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도 가야 할 운명입니다. 내가 부상을 입었어도 가야 할 것이요, 허리가 부러졌어도 동지의 손아귀를 붙들고 나를 밀어 줄 수 있고, 나를 끌어 줄 수 있는 친구라도 만들어 놓고 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생전에 정성을 들인 식구를 만들든가, 내가 피살을 다 팔아서 믿음의 아들딸을 만들어 놓든가 해야 되는 거예요. 어느때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아요? 비참한 것은 나에게 적용 안 되고 이방 사람, 혹은 기성교회 사람에게 적용된다,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비참한 그 일이 나에게 부딪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승은 생애를 바쳐 가지고 나갈 테니 가자 이겁니다. 다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다 원수예요. 세상을 바라볼 때, 만약 안 될 때가 있으면 흘러가는 바람소리가 친구예요. 하나님의 사정을 반짝이는 하나의 별을 바라보고 하소연도 하고, 흘러가는 물결을 보고도 하소연을 해야 돼요. '나는 너를 아나니 너는 내 사정을 알아 다오' 하는 때가 있는 거예요.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 자기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할 때도 있는 거예요. 혹은 어떠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애무하고 사랑하는 것을 볼 때 나에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건만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 효도를 못 해본 불효자예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그런 불효가 없어요. 인간 비애의 곡절이 내 가슴을 거치고, 역사적인 비애의 모든 초점이 내 가슴을 때리고 갈 적마다 낙망을 해서는 못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날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여, 내가 이 자리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 안 했어요. 절대 기도 안 해요. 몸부림친다는 거예요. 내가 감옥에서 매를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나요? 통곡하고 싶은 가슴을 가지고 억제할 수 없는 그런 사정인데 내가 아버지에게 '이 원수를 갚아 주소' 할 수 있어요? 원수에게 벼락을 쳤다면 이 민족이 다 망했다는 거예요. 세상으로 볼 때는 억울하고 분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느 누가 '문선생, 당신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한마디 하면 천하가 녹아날 듯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 모르는 생각과 남 모르는 사정을 안고 있는 시대적인 개척자는 심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