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구들에게 지지 않도록 자기 생활을 재정비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60권 PDF전문보기

일본 식구들에게 지지 않도록 자기 생활을 재정비해야

앞으로 외국 식구들이 본부라고 찾아왔는데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본부에 있다는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주일에 예배시간에도 시간도 안 지키고 말이지, 나오면 나오고 말면 말고. 그건 정회원이 아니예요.

일본 사람한테 지금까지 뭐 한국이 왜정 36년의 압정하에 뭐 이 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그런 말을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압정하에 서러움을 당했으면 이것을 풀어 제끼고 앞으로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여러분 자체가 갈 수 있느냐 할 때 '없다' 하면 앞으로 또 마찬가지예요. 누가 그 서러움을 알아줘요?

내가 지금 그래요. 사업대원들이 지금 다 왔지만 내가 다 포기하고 있는 거예요. 목표를 정했는데 정한 그 목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해서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거기에 배가 되는 노력을 해라 이거예요. 극복해야 되는 거예요. 승리는 반드시 극복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극복이라는 것은 정상이 아니예요 그것은 비정상이예요. 그것은 타협의 형태가 아니라 비타협의 형태예요. 거기에서 자기가 주체성을 가지고 재창조의 힘을 가해서 타협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 나가야만 승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의 여러 고비를 거쳐서 얻은 승리는 그 사람의 영원한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승리가 큰 승리가 되어서 국가에 남게 될때에는 충신이 되는 것이요, 세계에 남게 될 때에는 그 세계의 영웅이되는 거예요. 이것들을 보게 되면 '추운 방은 나는 싫어. 고기에다 밥을 먹어야 돼. 좋은 옷을….' 그런 퇴폐적인 생각은 아예 갖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 바라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임자네들이 생각하는 통일교회 교인과는 달라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임자네들, 소위 통일교회 다닌다고 하는 이런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무리와 내가 바라고 있는 통일교회 식구와는 다르다 이거예요.

이건 젊은 놈들이 외국 식구들, 일본 식구들이 왔으니 자기들 스스로 단결해 가지고 저들에게 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이런 의분심에 불타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어디에 활동을 나가야 되겠다고 밤을 새워가면서 의논하고 새벽같이 공적인 행로를 개척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여기 사업대원들, 뭐 졸음이 온다고? 평균 여섯 시간 잤으면 됐지 고단하기는 뭐가 고단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일본 식구들에게 지게 돼 있어요?

게으르고 생각 없는 녀석들은 지배받게 돼 있는 거예요. 이게 천리원칙이예요. 게으르고 생각 없는 녀석들이 남을 지배하는 것이 원칙인가요, 지배받는 것이 원칙인가요? 이 아주머니, 어때요? 지배받는 게 원칙이요, 지배하는 게 원칙이요? 어떤 게 원칙이예요? 웅? 어때요? 응? 「지배받는 게 원칙입니다」 너희들이 소위 430가정인데 꼴 좋구만. 이것들이 430가정이야? 앞으로는 전부 다 자체 내에 있어서…. 어떻게 됐는 지 뜻이라는 것은 어디에다가 버리고, 뜻을 중심삼은 가정이 진짜 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이게 안 되어 있다구요.

완성 기준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의 갈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7년노정을 거쳐가야 됩니다. 자기 갈 길을 어떻게 정비할 줄 모르고 발을 펴고 편안히 자고…. 나 그거 연구할 자료예요. 하긴 또 그렇지요. 관심이 없고 생각이 없으니….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결국은 다 빼앗겨요. 다 빼앗긴다 이거예요.

마,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젊은 녀석들은 단단히 결심해야 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 만해? 「예」 그 사람들에게 지게 돼 있는 거예요. 그건 지게 돼 있다구요.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딱 한마디만 하면 말과 행동이…. 말만 하면 벌써 행동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책임져야 되거든요. 즉각적이다 이거예요. 이 한국 녀석들은 말이야, 감투 끝을 밀어내 가지고 때었다 끼었다 하고 옆으로 가고 뭐 엎드리고 볼 것 다 본다구요. 그래 가지고 언제 자기 몫이 돌아갈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앞으로 일본 식구들한테 떨어지고, 일본 식구들한테 꺼꿀잽이로 뒤집어박히는 꼴을 한번 당해 봐야 한다구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말도 말라구요. 태어났으면 붤하나? 병신 자식이 돼 가지고 부모에게 염려나 끼치고, 그 문중에 주목거리가 되어 가지고 소란이나 일으키고, 그런 사람이 살아서 뭘해요? 차라리 없는 게 났지요.

여러분은 신세지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자기들이 진 빛만 해도, 지금까지 진 것만 해도 하늘땅에 왁차 있는데….

자기가 처신을 잘해야 된다구요. 어느 가문에 시집이나 장가를 갔으면 그집 가문에 따른 예절대로 해야 될 게 아니예요? 배운 것이 없고 뭐 이렇더라도. 자기가 부족하면 정성이라도 들여서 그것을 뒷받침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집 뒷방 할아버지라도 자기를 공인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임자네들 대해 가지고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나왔는데, 요즘에는 내가 식구들에 대해 가지고 관심을 안 가져요. 점점 내가 가지려고 해도 말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말이예요.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이상해진 거지요? 옛날에는 길거리에 가다 척 만나면 반갑고, 내가 어디에 가서 만나게 되면 반드시 점심도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지금은 길거리에서 만나도 보나마나예요. 그렇다고 내 마음이 변한 것이냐? 나는 내 마음이 변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그런 식구예요, 뜻 앞에. 뜻 앞에 그런 식구예요.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다 죽어 보라구요. 그때에 가서는 뭐 울고불고…. 어차피 다 죽을 게 아니예요?

요즘에 우리 식구들 중에는 영통하는 사람이 있는 데 말이예요, 그 사람들을 통해서 영인들이 하는 말이 자기는 몇천 년 전에 죽었고 몇백 년 전에 죽은 아무개라고 전부 다 소개하고는 '아! 선생님 소개 한번 받으려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되는 지 모릅니다' 한다구요. 그런 것들을 두고 본다면 말이예요, 이거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리를 배우고도 이런 엉터리들이 없다는 거예요. 뭐라고 할까? 바보 천치도 그 이상 천치가 없다는 거예요. 문고리를 열고 대문 안에 들어서면 문을 닫아야 할 텐데 그걸 모른다 이거예요. 닫아야 떨어지든가 하지요.

그래, 여러분들은 탕감복귀 완성했다고 생각하나요? 웅? 나를 따라오던 사탄이 떨어지고, 역사적인 모든 참소의 조건이라든가 하나님에게 6천 년 동안 고통을 주던 그 능수능란한 사탄이가, 즉 말하자면 여러분의 뒤를 따라오던 괴물단지가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어림도 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음을 각오해 가지고 그 길을 청산지어야 할 길이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 거예요.

또 선생님은 선생님의 길을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아, 우리 아버지가 훌륭하니 내 일을 다해 주니까 밥 먹는 것도 아버지가 내 대신 다 먹어 주겠지' 하지만 밥을 먹어 줄 수 있나요? 아버지가 밥을 먹는 다고 자기의 배가 부를 수 있어요? 있나요, 없나요? 「없습니다」 크게 얘기하라구요, 크게.

밥 먹는 법은 가르쳐 주지만 대신은 못 먹는 거예요. 먹는 것은 가르쳐 주잖아요, 내가. 여러분, '이렇게 해야 천국에 들어간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 직계 자녀를 3대 가인 아들이 복중에서부터 모실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되고, 그 가정에 있어서 그 부부가 평화의 터전이 되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본연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는 게 공식적으로 딱 나와 있잖아요, 이게.

가정이라는 터전을 가만히 보면 처량하다구요. 결국은 원리적인 것을 다 알아도 다른 생각을 한다구요. 심정을 내가 가만히 분석해 보면 말이예요, 뜻을 중심삼고, 본연의 자세를 중심삼고 가야 할 철칙, 하늘의 천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천법의 규정을 중심삼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 생사문제에 걸려들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뜻을 생각하누만.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형무소 같은 데에 들어가 보면 알 거예요. 형법 몇 조에 걸려 들어갔다 하는, 아리까리하게 왔다갔다하는 그런 몇 조, 그게 문제예요.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는 복귀의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사의 규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저 적당히, 소경 속여먹듯이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그걸 볼 때 그 사람들이 그 뜻을 중심삼고, 말씀을 중심삼고, 원리를 중심삼고, 원칙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심각한 법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은 당할 바가 없어요. 이 녀석들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있어도 원리에 대해서….

그러니까 이런 모든 국제적인 대회가 있다든가 해서 외국 식구들이 찾아올 때 좋다고 박수를 칠 때는 내가 부끄러운 존재로서 박수쳐 주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아, 당신이 왔구만. 아, 뜻이 이루어지누만!' 하고 그저 흥청거리고, 외국 사람이 왕래하면 '아, 우리가….' 하지 말라구요. 우리가 암만 하면 뭘해요?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가고 있는 길이 무엇을 하는 길인지 알아야 됩니다. 지금 현재 상태의 마음대로 그냥 죽어간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지' 하고 생각해요? 기가 막힌 놀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은 죽음문제가 제일 투쟁의 암이예요. 신앙생활은 살아서 죽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예요. '내가 가는 길이 이렇다'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사람은 불안한 사람이예요.

여러분들은 사형수들에 대해서 모를 거예요. 선생님은 사형수들과 많이 같이 살아 봤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 그 형(刑) 앞에 얼마나 심각한지 몰아요. 8월 추석이 되면 그 8월 추석을 역사에 없는 마지막 달로써 감상하는 그 심정은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와도 그걸 감상한다는 거예요. '아, 내가 살아생전 이 태풍이 마지막이 되겠구만' 하는 거예요. 모든 만상을 새로이 감정할 수 있는 심각한 심정에서 허덕이는 것을 느낀다구요.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될 때, 신앙길을 가는 사람 중에 이와 같이 심각한 자리에서 하늘의 생명을 참 이와 같이 가치있게 저울질하면서 하루의 생활을 다짐해 나가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이냐 이거예요. 이게 심각한 문제예요. 선생님도 그런 심각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런 길을 계속해 나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껄렁껄렁해도 선생님은 껄렁껄렁하지 않아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