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대상을 만들려면 자기 전체를 투입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0권 PDF전문보기

사랑의 대상을 만들려면 자기 전체를 투입해야

자,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의 상대를 창조를 했는데 어떻게 창조했느냐? 사랑을 위해서,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전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전체를 투입한 거예요. '내가 있는 것은 너를 위해 있다' 이거예요. 그 상대라는 거예요. 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래야 서쪽에서 내 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제일 높은 데에 있다면 제일 낮은 데는 여러분들이 있다구요. 내가 낮은 데를 향해 더 급속도로 내려가면 여러분들은 급속도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이거예요.

그러면, 올라가는 이 운동법칙에 있어서 입력은 출력보다 작다? 「크다」 윤박사! 윤박사님! 「예」 입력은 출력보다? 「크다」 크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는 한 가지 달라요. 이게 우주의 원칙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있기 때문에 균형이 취해 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작용에 있어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 크다 이거예요. 그러니 사랑은 하면 할수록 폭발이라는 거예요. 하면 할수록 확대된다는 거예요.

윤박사, 그런 거 몰랐지요? 저기 문봉재씨도 왔구만. 내가 내일 만나려고 했는데, 내일 내려가는데 말이예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놈의 서북청년 대장님! 할 거요, 안 할 거요? 「하겠습니다」 비밀리에 해야 되겠어요. 소리 내면 안 되겠다구요. 내가 문봉재씨를 만난 건, 요전에 무릎을 대고 앉아서 처음 만났어요. 문씨가 그래도 소금 넣은 밥처럼 짭짤하거든요. '이 사람, 나를 종장으로 세워 줬으니 내 말을 들어야 돼' 이래 가지고 할말 못 할말 퍼부으니까, '아이고 문씨가 복 받겠구만' 이러더라구요. 오늘도 봐요. 오늘도 얘기하는데 남 같으면 '몇 번 만났는 데 저래?' 할거예요. 그러나 문씨는 우리 통일교인 보다도 가깝다구요. 너희들보다 가깝다구, 이 녀석들아! (웃음) 그 한마디면 다 도망가겠구만.

하나님이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상을 지었는데 대상을 어떻게 지었느냐?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짓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우주의 출발 기점이 여기서부터 달라지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사랑은 위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창조는 위하는 사랑에 따라서 됐다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기성교회는 그걸 모르는 거예요.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되고 죄악된 거야' 그러면서 부자지간에,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들딸이 무엇을 갖고 얘기를 하겠어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하나될 수 있어요? 없어요. 거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많은데, 그따위 사상을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단이고 뭐…. 두고 보라구요, 누가 망하나. 잘 망해 가더구만!

천지를 창조한 동기는 위하는 사랑을 찾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창조한 그 출발은 대상을 위해서 다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된 사람은 종적인 주체 앞에 대상의 자리에 서 가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하늘이 우리를 위해서 투입했으니 우리도 전체를 투입해야 됩니다. 참된 사람이 뭐고, 참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그건 근본 문제입니다.

이걸 잘못하면 역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유심, 유물의 그 개념적 차이로 말미암아 두 세계가 벌어진 것입니다. 위하는 데서부터 발전이 벌어지는 거예요, 위하는 힘의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받겠다는 힘만 있게 되면 자기 하나밖에 안 남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주의 근본인 것입니다. 내가 알고 보니, 일생 동안 고생해서 찾아온 결론이 그거예요.

참이라는 것은 뭐냐? 참된 교수는 어떤 교수냐? 학생을 위해서 전부 투입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가정을 사랑하는 이상, 여편네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이상 투입해야 됩니다. 그것이 참된 교수님입니다. 참되다는 것의 정의가 그렇게 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가 어떤 남자이고, 참된 여자가 어떤 여자이고, 참된 부부가 어떤 부부냐 하는 것이 전부 다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는 자기 생애를 걸고 전체에 투입하고, 전체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해서! 태어나기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참된 여자도 자기를 중심삼고 '너 나를 사랑해라'가 아니예요. 사랑은 하고도 또 해야 합니다. 왜? 사랑은 암만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고도 또 하고,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 싶다는 거예요. 아까 사랑은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고 했듯이.

예를 들어 말하면, 그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말이예요.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친구가 내가 어려을 때 참된 마음으로 백만 원을 도와줬다고 해봐요. 내가 은사를 받고 그 은덕을 갚겠다고 생각할 때 말이예요. 백만 원을 신세 졌다고 할 때 십만 원쯤 떼서 갚고 싶은 마음이겠어요, 백만 원에다 더 플러스해 가지고 갚고 싶은 마음이겠어요? 「백만 원 이상…」 참을 대하는 데는 그렇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확대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확대 논리가 벌어지고 전진적 창조설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주의 근본은 위하는 데서부터! 하나님이 그러시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찾기 위해 전체를 투입한 데서부터 사랑의 길이 개척된 것입니다. 위하는 거예요. 보라구요, 그 말이 맞나 안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