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원하는 방향, 마음이 원하는 방향"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94권 PDF전문보기

몸이 원하는 방향, 마음이 원하는 방향

이렇게 볼 때에 앞으로 세계의 조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 이건 무엇이? 돈 가지고 인류의 조수를 바로잡을 수 있느냐? 사상 가지고 잡을 수 있느냐? 혹은 정치력 가지고 잡을 수 있느냐?

그러면 외적인 환경적 여건―여건 하면 이건 문화라든가 정치 경제 모든 것이 들어가겠지요―이 우리 자체를 영원한 안식처로 안내할 수 있겠느냐?

우리 인간을 보게 된다면 이중 구조로 돼 있어요. 몸이 원하는 방향과 마음이 원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통합적인 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의 몸이 바라는 방향보다도 마음이 바라는 방향이…. 이것은 과거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배우지 않고도 알아요. 누가 가르쳐 줘 가지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지시를 받고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거예요.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 이거예요. 이렇게 가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환경 여건에 할수없이 끌려가고 있다 이거예요. 마음은 이렇게 가고자 하는데 몸뚱이는 이렇게 간다 이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에 그 마음이 가서 기착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 여러분 마음이 기착하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 남자의 마음, 여자의 마음이 있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을 보게 된다면 남자의 마음 여자의 마음이 있어요. 그것이 사회형태를 거쳐 가기 위해서는 가정을 중심삼고 부부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형태를 두고 보면 국가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엔 아시아면 아시아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게 점점 커 가지고 세계의 마음이 있을 것이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 땅을 중심삼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적인 중심 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서는 자리,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마음이 서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개인의 마음이 서고 싶은 자리하고 가정의 마음이 서고 싶은 자리하고 종족의 마음, 국가·세계의 마음이 서고 싶은 자리가 다를 것이냐 이거예요. 마음이 서고 싶은 자리가 다를 것이냐?

우리 몸은 일생 동안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30대에 성공 못 하면 40대가 달라질 수 있고, 40대에 성공 못 하면 50대가 달라질 수 있고, 자기 가정의 생활 환경은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어요. 더더욱이나 한국 사람은 그런 면에 있어서 천재적 소질을 가진 민족이라는 평도 받고 있지만 말이예요.

이건 뭐 10년 동안 일하던 것도 일주일 동안에 뒤집어 박고 새로운 일을 잘한다 이거예요. 그건 중국 사람이라든가 일본 사람은 못 하는데, 한국 사람은 그 챔피언이예요. 암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을 중심삼고 사는 인간에 있어서 마음의 방향을 몸의 방향이 맞춰 주느냐?

또 마음과 몸은 언제나 같이 안 돼 있어요. 이것은 한국 사람도 그렇고, 일본 사람도 그래요. 그건 마찬가지예요. 미국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선진국가, 아무리 후진국가라도 마음과 몸이 바라는 길이 달라요. 몸은 편한 걸 원하고, 잘먹는 걸 원하고, 놀기를 원한다 이거예요.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마음은 잘먹는 걸 원하지 않아요. 잘먹으면 벌써 문제라구요. `너만 잘먹겠어?' 한다구요. 또 몸뚱이는 놀면 좋아하지만, 마음은 `너만 이렇게 놀고 살아서 되겠어?' 이런다는 거예요. 마음세계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내용은 초역사적이요 초세계적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몸과 마음은 언제나 화합하지 않고 상충되어 가지고 맞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이겁니다.

인간세계의 이러한 생활 형태는 급변하는 세계라고 해서 현재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옛날서부터 그런 것입니다. 옛날서부터 우리 인간은 몸이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의 싸움을 일생 동안 해 가면서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몸이 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의·식·주(衣食住) 문제예요, 의·식·주 문제. 이렇게 돼요. 그러면 마음이 추구하는 것이 뭐냐 할 때, 좋은 데서 잘먹고 잘입고 산다 하더라도 마음은 편치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더더욱이나 그래요. 남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갖출 수 있는 환경이지만, 세상 같으면 뽐내고 자랑할 수 있는데 말이예요, 가만히 생각하면 좋은 차 타고 뽐낼 것이 아니라 머리를 숙이고 가야 된다는 거지요. 왜? 마음은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를 들면 마음이 말이예요, 오늘날 한국 사람이 한 6천만이라고 하게 되면 한 사람 앞에 한 1억 원씩 나눠 주자 해서 6천만에게 다 나눠 줬다 이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어떨 것 같아요? `야, 왜 한국 사람만 줘? 아시아 대륙에서 중국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이 더 잘살아. 또 아시아 사람은 저 아프리카 사람보다도 더 잘살아. 세계 인류 가운데 한국 사람보다도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고 벌써 평이 나온다구요. 한국 사람만이 아니고 국경을 넘어서 중국 사람을 생각하고, 세계 사람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거 왜 그러냐 이거예요. 50억 인류를 자기가 마음으로 다 해줘도 그 마음은 다 끝났다고 하지 않고 더 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도와줘도 또 도와줘라 또 도와줘라 한다는 거예요. 그러한 이율배반된 심신의 상충경(相衝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그것을 소화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인생은 고해라, 인생의 행로는 고해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