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위하는 사랑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5권 PDF전문보기

하나밖에 없는, 위하는 사랑의 길

부모로서 아들딸을 위해 자기 전부를 투입해 가는 것이 천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래야 이론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위해서 효자 효녀를 길러 놓고는 나라를 위해서 충신의 길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에게 충신이 어떻다는 것을, 밤이나 낮이나 나라를 위하고 산다는 것을 가르쳐야 돼요. 자기 아들딸을 모아 놓고는 아들딸 위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사는 것도 그렇게 살게 되면 그 아들딸은 나라의 배신자가 되지 않습니다.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할 때는 세계를 위해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백성들이 모여 가지고 말하게 될 때는 세계를 위해서 살자고 해야 돼요. 대통령부터 그렇게 살고 국민이 그렇게 사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세계를 이어받는 거예요. 정도를 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하는 마음은 하나예요. 세계는 하늘땅을 위해야 됩니다.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돼요. 세계가 세계 자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적인 영계를 연결시키기 위한 만민 공통의 단위적 길입니다. 하나밖에 없다구요. 일방향의 한 길밖에 없는 길을 가야 된다구요. 그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사랑에서 태어났고, 부모에게서 사랑으로 키움받아 가지고 상대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낳아 길러 가지고 가정과 종족을 사랑하면서 더 큰 사랑의 세계로 연결시켜 가지고 나중에는 개인의 사랑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골에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대양에 들어가 가지고 흑조(黑潮)와 더불어 세계를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딱 물과 같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가 있고, 사랑의 나라가 있고, 사랑의 종족이 있고, 사랑의 가정이 있고, 사랑의 내가 있어야 된다구요.

또 참된 생명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왜? 영생하니까. 나라도 생명, 종족도 생명, 가정도 생명, 나도 생명이 있어요. 생명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엔 자기가 태어나기를 어떻게 태어났어요?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았으니 혈족을 남겨야지요. 핏줄을 따라서 심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자식이 없어서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저나라에 가면 한 면이 없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동쪽이 막혀 버려요. 그러니 어디 가서 붙어 살아야 돼요. 편입되어야 된다구요. 편입하려니 그 그룹에 들어가서 천대받으며 봉사하고 화합해야 된다구요. 이것이 몇천년, 몇억년 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대화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니까 자기 사타구니를 치면서 `여기 있다. 여기 있다' 그랬다며?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바로 그 말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왕궁같이 모셔야 됩니다. 처녀 총각들은 자기 왕궁같이 모셔야 돼요. 여왕이 계실 수 있는 왕궁이요, 그 나라의 왕이 계실 수 있는 왕궁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모실 줄 알고 귀하게 여겨 사랑하게 되면 꽃이 피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아들의 꽃이 피는 것이요, 딸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상천하의 왕의 자리, 왕후의 자리를 점령하는 거예요. 딴 것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여편네, 아들딸,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듯 세계를 사랑하라 그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 그렇게 거룩한 성전을 갖고 있는 형제입니다. 같으니까 같이 사랑해야지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기도 하나님의 사랑, 저기도 하나님의 사랑, 여기도 저기도 전부 다 생명과 혈통이 서로 연결된 거룩한 무리라는 것입니다. 홀리 도터(holy daughter;거룩한 딸), 홀리 선(holy son;거룩한 아들), 홀리 패밀리(holy family;거룩한 가정)라는 거예요. 그것을 존중시하는 국민이 홀리 네이션(holy nation;거룩한 나라)이예요. 알겠어요?

그것을 영원히 존중시하면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거예요. 딴 거 아닙니다. 간단해요. 딴 데 보고 기도하지 말라구요. 그거 보고 `야, 이놈아, 너 어떻게 걸어왔지?' 하면서 기도하라구요. 그것 보고 기도하라는 거예요. 이게 웃을 얘기가 아니라 심각한 얘기입니다. `너 여기서 어떻게 살아왔어?' 대화하라는 거예요. `그런 천리의 대도에 일치해야 될 텐데 그렇게 못 살았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내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 참외밭에 가서 몰래 참외 따 먹고, 배가 고파 남의 금고에서 푼돈 집어 왔다고 해서 그게 죄가 아닙니다. 주인한테 인사를 안 했을 뿐이지요. 주인한테 얘기하면 그냥 줄 거라구요. 안 그래요? 밥 한 그릇 안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안 줄 사람 없다구요. 도둑놈 같은 녀석은 남의 것 훔쳐 왔으면서도 안 준다 이거예요. 그래서 얘기도 하지 않고 거룩한 사람이 쓸쩍 훔쳐와서 밥을 사 먹어도 죄가 아니예요. 다윗도 배고플 때 성전에 들어가 가지고 진설병을 먹지 않았어요? 그건 제사장밖에 못 먹는데 말입니다. 그건 죄가 아니예요.

배고픈 사람이 지나가다 부엌에 들어가 가지고 밥 먹어도 괜찮아요. 앞으로 우리 시대는 그래요. 배고픈 사람이 지나가다가 어느 집 부엌에 들어가서 밥 남은 것 먹고 간다고 해서 그것을 탓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배고프니까 동정해야지요. 잘 데가 없어서 들어와 가지고 저 문쪽에서 자겠다고 하면…. 그 손님이 어떤 손님인지 몰라요. 찾아온 손님을 자기 이상 귀하게 대접하고 안방에 모시고 잘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협회장 집에는 누가 와서 살았나? 「예, 접니다」 몇 달 살았어? 「한 1년 2개월 살았습니다」 싸우지 않았어? 「전혀 싸운 일 없습니다」 `협회장 저거 왜 저꼴이야!' 그러지 않았어? 「아닙니다」 그래, 협회장은 어떻게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