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을 가려 주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19권 PDF전문보기

고향 가는 길을 가려 주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

오늘날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선생님의 입장을 보더라도 선생님이 혼자 일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을 알기 위해서 깨우친 이후에, 이것을 빨리 해 주고 싶지만 알려 줄 수 없는 입장에서 깨우친 이후에 이 길을 가는 데는 선생님의 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일과 같이, 하나님이 자기 일로서 이해하면서 이 길을 거쳐오는 대표자의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을 문을 열 수 있게끔 노력하면서 나오신 하늘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연들의 목적이 뭐냐면, 단 한 가지입니다. 그 목적이 과거에 지나간 일이고 과거의 일이라 해서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 모든 종교적 배후의 사연들을 통하고 수많은 종교들을 통해서 선교 역사를 거쳐오고 모든 투쟁역사를 거쳐 희생의 대가를 치른 모든 전부가 이제야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로마제국에서 희생돼 나가는 그 가외의 이 세계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과 더불어 역사과정에 어느 한 날이라도 빠짐이 없이, 남김이 없이 거기에 생명줄을 끊어서 비운의 소리와 피의 제단을 연결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 하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역사 전부, 기독교 역사 전부, 유대교 역사 전부, 그 다음에는 동양의 모든 종교, 이슬람까지도 전부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 모든 수난의 배후에 곡절을 합쳐 가지고 투입한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할 때에, 그 어떤 종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요, 기독교를 위한 것도 아니요, 통일교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대표적으로 개척해 나온 통일교의 이 모든 것도 통일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나 하나 해방을 위한 것입니다. 나 하나 해방을 위해서 자유스럽게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이런 자리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그 하나의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 알아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의 하나의 거동이 오늘날 자유스럽게 하늘 앞에 감사하고 오늘날 뜻 가운데 이루어진 승리의 터전 앞에 자랑한다 할 때, 그 자랑이 여러분만의 자랑이 아닙니다. 인류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영계와 앞으로 올 후손까지, 현세를 대표함은 물론이고 과거를 대표함과 동시에 앞으로 올 후세를 대표해 가지고 내가 해방된 자신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해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조상과 종족들이 뒤따라 해방의 길이 열리고,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후손들이 해방된 자리를 차지하여 주인의 자리로 지그재그가 아니라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나에게 부여한 역사적인 이 복을 받은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혹은 여러분의 수많은 조상을 거쳐오면서 얼마나 그것을 그리워했겠습니까? 그 눈들이 수많은 역사를 거쳐오면서 탕자가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던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탕자가 돌아올 때의 기본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던, 미래에 그런 모습을 보겠다고 소원하던, 그 모든 눈 그것이 나에게 와 가지고 비로소 눈 자체가 해원성사했고 해방을 가질 수 있어 가지고 이 눈이 보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하나의 초점을 대신한 가치의 것을 내가 보고 살 수 있는 행복한 눈이었다고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코면 코, 얼마나 이 코가 인류와 더불어 냄새를 맡아 왔습니까? 입이면 입, 귀면 귀, 오관이면 오관, 일신이면 일신 자체가 전부 그런 가운데서 내 눈의 해방과 코의 해방과 입의 해방과 귀의 해방과 손발의 해방, 오관의 해방이라는 모든 전부는, 오늘날 우리 개체가 바랄 수 있는 해방뿐이 아니라 어느 한 때 역사를 건 해방의 승리의 날로서 내 자체가 갖추어 질 수 있는 그 날이 없을 때는 눈을 가지고도, 우리 오관을 가지고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은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해방되지 못한 사람은, 자유를 갖지 못한 사람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고향 돌아가는 사람이 부모를 몰라볼 수 있어요? 안 그래요?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부모의 고향에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있고, 형님 누나의 사랑이 있고, 동생들의 사랑이 있고, 처자들의 사랑이 있고 인친간의 사랑이 있고 동네 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동네의 모든 전부는 나와 사랑을 중심으로 인연되어 품고 싶은 향리로서, 마을로서, 군으로서, 나라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탕자의 모습을 벗어나 가지고 내 하나의 해방된 승리적 효자로서 뿐만 아니라 하늘땅이 칭송할 수 있는 성공한 모습으로서 고향에 나타나게 될 때, 모든 산야와 인근의 모든 전부가, 향리와 친척 전부와 자기 일족 전부가 환성을 지르면서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좋아하는 것 모두,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모든 것을 전부 다 나누어 주더라도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쁜 날을 맞게 될 때 수십 년 고생했더라도 한 날에 다 써 버리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있으면 더 쓰고 싶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쓴다 하게 될 때 그 물건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참사랑의 힘은 언제나 투입한 것보다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이 커 나오기 위해서도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운동했기 때문에 커 나올 수 있습니다. 참사랑을 안 가지고, 지금 자연과 역학적인 기준에서 입력이 출력보다 크다는 입장의 작용을 하는 이런 힘 가지고는 하나님 자체는 커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내적 운동을 중심삼고 해 나왔기 때문에, 100을 투입하면 150이 나오고, 1000을 투입하면 1500이 나오고, 1만을 투입하면 2만이 나올 수 있도록 커 나올 수 있는 참사랑의 실적, 존재 실적, 가치 실적의 내용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의 역사가 사탄세계를 정복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그보다 더할 것이 아니냐? 쫓겨났지만 거기에는 자기의 모든 생명의 인연을 갖춘 배후가 전부 다 완비되어 있는 거예요. 즉 부모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형님 인친간이 있고, 모든 것이 있는데,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쫓겨난 신세가 되었을 때는 얼마나 비통하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뒤를 돌아봐도 동정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자 외롭게 울더라도 편 되어서 울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편 되어서 울게 되면 주인에게 배척받는 것입니다. 나라로 말하면 역적의 자식들, 쫓겨난 자식들이 아무리 남이 모르는 곳에 가서 친구가 되고 환경이 백 퍼센트 다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역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때는 침 뱉고 180도 돌아서는 것입니다.

인연되었던 사실이 크면 클수록 큰 만큼 한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게 오늘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인간들이 이 땅에 와 가지고 뭐 어디 가 박혀서 살기를 바라서 허덕이는 걸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 말로(末路)가 어떻게 될 것인지 뻔한 건데, 백 번 노력해도 백 번 망할 수 있는 길을 가면서 그걸 바라보고 소망을 삼고 사는 그런 무가치한 인간상을 바라볼 때, `본래 저놈들이 하늘나라의 황족의 자녀로서 연결되어야 했던 것인데, 저럴 수 있느냐?' 하고 한탄하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야겠어요. 하늘은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된 이 무리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대가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서, 한걸음 한걸음 올라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종의 종으로부터 양자의 자리를 거쳐서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 배경을 가려서 오늘 통일교회, 기독교까지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모두가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통일된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수일 동안에,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평화종교연합을 창설했습니다. 그 종교연합을 창설한 것이 종교연합을 필요로 하는 나만이 아니고, 환경적 모든 형제들이 동참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척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은 상대적이지, 주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 여건이라는 것은 내가 있으면 내가 대할 수 있는 상대권이지, 내 자리는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내 자리라는 것은 그 모든 환경적 여건, 즉 세계평화종교연합이라든가 세계평화연합이든가 이 모든 전부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 하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얼마나 관심을 가졌어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거예요. 그 역사적 부활권을 개척하고 나온 일은 우리 개개인의 해방을 위해서 나온 것은 틀림없는데, 그런 길이 닦아져 나올 때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얼마나 관계를 맺으면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여러분 본심에 들어가 반문하게 될 때 양으로 보면 얼마나 크겠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먹고 살고 자녀들을 위하고, 뭐 어떻고 어떻고, 자기 출세를 위하고, 그런 마음들과 비교하게 될 때, 하늘이 공적인 길을 개척한 모든 전부가 자기 하나를 해방하기 위한 것인데, 보다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방계적인 쓰레기밖에 되지 않은 것을 관여해서 중요시하고, 정작 귀한 것은 방관시하는 입장에 선 그걸 바라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일시에 벼락을 내려 옥살박살 전부 가루로 만들어 날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잊고 나오라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 참부모가 이 땅에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다 밝혀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른다는 말이 성립 안됩니다. 다 알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얘기했지만, 교수들이 모여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 같지 않은 말, 꿈같은 얘기 다 해 나왔는데 이제 와서 다 이루었다는 거예요. 종교를 통일하고 세계를 하나 만들어서 통일세계가 되고 공산당 세계 자유세계를 해방해서 하나님 뜻으로 하나 만든다는, 그 모든 전부가 이제는 말한 대로 시야에 들어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