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조부와 모친에 대한 일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0권 PDF전문보기

선생님의 조부와 모친에 대한 일화

난 열두 살 때 우리 할아버지까지 기합을 준 거예요. 내가 쓰윽 들어갔는데 할아버지가 담뱃불을 끄지 않으면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손자 앞에 담뱃대 물고 연기 피는 게 좋은 것이오, 안 좋은 것이오?' (웃음) 그러니까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야, 네가 훌륭하구나!' 그거 맞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하고픈 대로 다 해도 문제없었어요. 아버지가 소 팔아 놓은 돈이 그때 돈으로 70원인가? 그때만 해도 백 원 하게 되면 대단했다구요. 어머니 아버지는 그랬어요. 우리 어머니만 해도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 한 달 동안 천신만고해 가지고…. 그곳이 1천8백 리 길입니다. 그 길을 경계지대를 넘어 가지고 오려니까 얼마나 검문이 많아요. 어머니가 울고 다니니까 나중에는 동정 받아 가지고 잘 오게 됐지만. `아들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부모 없다. 우리 어머니도 저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빨갱이들도 후원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와 가지고는 언제나 옛날같이…. 내가 부모님 하라는 것 요만큼도 안 했습니다. `그게 뭐요?' 하고 나무랜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는 내 아들 되지, 동네 아들 되지 말아라. 부모가 너를 천신만고 키웠으면 아들로서 부모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왜 동네가 좋아하고 나라가 좋아하는 걸 하느냐?' 그건 나중이다. 이거예요. 나는 그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면회 와 가지고 내가 결혼할 때 입던 명주바지 같은 것 전부 입으라고 갖다 주면 그거 다 나눠 줬습니다. 그러고 나는 다 해져 가지고 다리 살이 다 보이는 간복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내복 같은 것도 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요. 그래 내가 얘기한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은 10년이 되도록 한번도 면회 온 사람이 없소. 간복도 없어서 꿰매 입고 있소. 빌어 입고 있소. 그 사람들 앞에 명주바지 입고 편안하게 살면 내 양심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양심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 그렇게 못하오! 그런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 문씨네 가문, 김씨 후손은 망국지종이 되는 거요!'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썸벅썸벅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목을 놓고 말을 못했다구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야, 내가 불효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내가 불효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을 빛내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빛낼 수 있는 기반을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동조하고 후원하고 칭찬하는 부모가 못됐다는 것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논산 할머니(이백림)가 해원기도 한다고 야단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머니 한번 불러내다가 해원기도 하면 좋은 곳에 간다구요. 그러나 나 그런 거 못한다 이거예요. 원리원칙이 그래요. 잡동사니 저 아래 전부 다 마을에서….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 문장로한테 접해 가지고 나타난 것입니다. 내가 문장로에게 형님 되는데, 내가 그저 미워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남들은 전부 다 기도해 주도록 놔두고 말이에요, 자기 어머니는 기도 한번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거지요. 지금까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 한번 안 했다구요. 뭐를 위해 기도해? 나라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기도했지요. 그건 다 나 따라오게 마련이예요. 승리하고 다 때가 되면 말이에요. 알겠어요? 대통령이 되면 그 일족이 전부 다 백악관에 따라 들어가는 거 아니예요? 걱정도 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버려두면 수습할 수 있지만, 세계는 내버려두면 수습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버려둬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냥두면 전부 다 싸우다 망하겠기 때문에 내가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난 그렇게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