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길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은 예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29권 PDF전문보기

죽음길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은 예수님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들으라구요. 이 세상 성인 중에 가장 중심 성인은 누구예요? 「예수님입니다.」 어머니의 강연 내용에 있는 예수님의 혈통, 그것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성별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어떤 조건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잉태된 그 아기는 최초의 참된 사랑을 중심한 결실체입니다. 그분은 거짓 사랑과는 영원히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한 성자로서 태어난 분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석가모니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마호메트도 아니고, 공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정권을 중심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부모시요, 예수님은 절대적인 남편이자 절대적인 형의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내용은 전부 다 가정 중심한 내용, 사랑의 내용이 그 중심으로 돼 있습니다. 그 사랑은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적인 내용입니다. 그런 내용을 전부 세계에 연결한 중심자가 예수님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자기 중심한 생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사건을 생각해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있지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마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은 부정하는 거예요. 가장 비천한 로마 병사가 무리 가운데서 창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것입니다. 그 병정은 예수에게는 원수지요. 보통사람은 그런 원수가 있다면 `이 돌로 쳐 죽일 놈, 언젠가는 죽여 버릴 거야!' 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은 달라요. 그 병사가 자기를 찔렀지만,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만 하나님에게 중재의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병사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이런 일을 한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에게는 자기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돌아가시게 됐을 때, 죽음의 절정에 서서도 자기라는 내용을 주장한 적이 없어요. 그것이 천하 일품(天下一品)이요, 위하여 사는 창조세계의 주체인 남성으로서,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권한의 토대를 남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4시간 정도면 일주할 수 있는 곳이라구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전통적 유대교가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가운데 이단자로 몰리고, 로마 정부가 싫어하는 교란자로서 쫓김을 당하면서도…. 66권의 성서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기사는 두 동네에서 있었던 내용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은 실망했습니다. 예수는 그 전통 정신을 가지고 메시아로서 오신 거예요. 메시아의 자격이 그것을 통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대민족은 거기에 반역한 것입니다.

그러면 쫓기다가 죽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문화권을 흡수·소화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통일된 종교권을 만들 수 있었느냐?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대답할 길이 없어요. 본래 하나님이 뜻으로 세우신 역사의 방향이 있었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비뚤어진 길을 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의 정신을 중심으로 하여 섭리 역사를 통해 인간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키워 오셨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봐요. 하나님 자체도 그래요.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잃었어요. 아담은 만왕의 왕으로서 아버지가 되었어야 합니다. 동서 남북, 방향은 바뀌어도 그 중심은 영원히 중심성을 지키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자체도 자녀가 타락했다고 해서 그 자녀를 잊어버릴 수 있겠어요? 타락 사건 그 자체는 물론 잊을 수 있겠지요. 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 발상을 가지지 않으면 타락한 그 후손을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처럼 생각하는 길은 영원히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