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회는 가정적 세계화 시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99권 PDF전문보기

통일교회는 가정적 세계화 시대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적 세계화 시대예요. 사탄세계는 국가적 세계화 시대인데 멸망하는 거예요. 해체되어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오게 되면 세계주의니 국가니 사탄세계는 전부 다 없어진다구요. 다 부정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족, 7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는 데 있어서 7대 가운데는 효자도 있고 다 있을 것 아니예요? 효자도 있고, 그 다음에는 가정으로 말하게 되면 원앙새와 같은 그런 가정도 있고, 다 있을 거예요. 그 모든 것의 이상에, 그 기준 이상에 올라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이상에 올라갈 수 있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뭐냐? 믿는다는 것이 천 명이면 천 명이 전부 다 달라요. 그걸 고맙게 생각해야 돼요. 그것을 전부 다 잃어버린 환경에서, 전부 다 분산된 환경에서 하늘이 제시한 것이 뭐냐? 돌아왔다는 거예요. 다른 것은 다 망해 가고, 하늘은 시작하니 하나님이 천지 창조한 본연의 자리의 그것을 조건으로…. 그것이 절대신앙이에요. 절대신앙, 그 다음에 뭐라구요?「절대사랑.」절대사랑·절대복종입니다. 그것이 자르딘 제1선언이에요. 제2선언은 뭐예요? 하나님은 4대 속성이 있는데, 절대·유일·불변·영원입니다. 그 기준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이런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 사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신앙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거예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아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요. 보이면 당연히 믿지, 그렇지만 절대 믿어야 돼요. 하나님이 동그란 분인데 말이에요, 만약에 하나님이 '내가 삼각형으로 생겼다.' 하고 말하면 그걸 절대 믿으라는 거예요. 동그랗게 되어 있으면 이걸 쳐버리라는 거예요. 몇 번 쳐버려야 되느냐? 열두 번 쳐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열두 번이면 12수는 귀일 수와 마찬가지예요. 10수와 마찬가지예요. 열두 번을 '그것이 아니다!' 그래도 말이에요, 열두 번 이상 전부 쳐버려야 한다구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자기가 알게 된다는 거예요, 자연히. 가르쳐 주지 않아요. 복귀노정을 가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도 자연히 알게 되는 거예요. 몸 마음이 하나돼야만 알아요. 몸 마음이 하나돼야 안다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게 그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무엇이 없으면 이 길을 찾아 나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남석은 반드시 남북으로 향하잖아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착 보면 싹…. 하나님도 딱 하면 벌써 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따라 나오는 거예요. 그 양심, 본심의 기준이 참 놀랍다는 거예요. 사심이 없으면 알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래, 선생님이 이 전환시대에, 때가 바꿔지는 이 전환시대를 잘 캐치해 나온 거예요. 가만히 있더라도 알아요. 가만히 있으면 몸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보통 사람은 모르지만, 선생님이 지금 축복이라든가 선포하는 모든 것을 거기에 다 맞게끔 지금까지 처리해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3억6천만쌍 축복이 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3억6천만쌍이 얼마나 많은 수인지 몰라요. 아마 1백 달러짜리를 일생 동안 세더라도 세지 못할 거예요. 일생 동안 빨리 손으로 세더라도 세지 못할 수라는 거예요. 그건 누구도 믿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믿었겠어요, 안 믿었겠어요?「믿었습니다.」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는다는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얼마나 차이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걸 누가 할 수 없어요. 그 누가 밑창에 내려가서 밀어 줘야 돼요. 하나님이 잡아당기고 밀어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그래, 제일 좋은 것이 뭐냐? 바다는 수평이에요.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낚시 도라고 그랬잖아요, 신선들이? 도를 닦아 가지고 천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과 산, 산수(山水)를 겸해야 된다고 그러잖아요, 산수? 산수 알아요, 산수?「예.」조상의 산소가 아니예요. 산소가 아니예요. 물과 자연이 합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언제든지 사람이 수평의 자리, 수평의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바다는 언제나 수평이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있어서 수직을 맞추는 거예요. 제일 빨라요. 그 낚싯대를 중심삼고 하루종일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바라보면 생각을 전부 다 알아요. 줄만 딱 잡고 있으면 말이에요. 낚싯줄 알아요? 딱 잡고 있으면 물겠으면 물고 말겠으면 말고…. 물면 손가락이 잡아챈다는 거예요. 그 낚싯대를 보고 흔들리면 벌써 낚싯대를 채는 거예요. 꼭대기를 안 보는 거지요. 그런 것이 가능해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낚싯대가 다섯이면 다섯 개의 줄만 보면 다 아는 거예요, 밑에를.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기도와 마찬가지예요. 기도보다 더 단순하지요. 고기가 무는 것을 놓칠 수 없어요. 모를 수 없어요. 상대 기준이 생기면 즉각 안다는 거예요. 직통한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는지 쓱 눈 감게 되면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게 된다면 기도가 필요 없어요. 생각하는 그 모토를 붙들고, 전부 다 24시간 그걸 붙들고 가는 사람은 기도 하나도 안 해도 돼요. 내가 20년 동안 기도를 안 했어요, 20년 동안. 어머니도 이상하게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작년 8월 초하루부터 영계와 육계를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이 기도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