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공적 일을 하라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바. 공적 일을 하라

하늘의 법도는 무엇이냐? 공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사탄 것이요, 공적인 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의를 위하여 가야 됩니다. 그런 노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거기에 침해를 받지 않고 어려운 길도 생명력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봄을 맞이하는 천국사람이 될 것입니다. (47-272, 1971.8.29)

여러분이 시장에 가서 보더라도 가게 주인이 자기 욕심만 부리게 되면 손님들이 물건을 사러 가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만 부리면 누구나 싫어합니다.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치리할 수 있는 방법과 비결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몰라서 천국에 못 가게 되었다고 핑계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의 누나와 여러분에게 맛있는 떡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는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몫을 다 먹고 누나는 먹지 않고 정성껏 보관해 두었던 것을 잠을 자다 살짝 일어나 혼자 먹으려고 하면 마음이 `이놈아! 이 자식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야 되는 겁니다. 왜냐? 여러분의 마음은 공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것을 따라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본래 천법을 따라가면 자기 자신이 망하는 것을 방비해 주고 보호해 주려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본래 있다는 것은 뭐냐? 이것은 하나님에게 본래부터 그러한 마음이 있기에 인간에게도 본래부터 있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심아,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다.` 그럽니까? `내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하고 명령한다고 해서 양심이 작용합니까? 어디인지 모르지만 다른 데서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공사(公私) 문제를 중심삼고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41, 1970.6.4)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을 중심삼고 선악의 분기점과 공사의 분기점에서 안팎으로 뒤넘이치고 왔다갔다하다가 결국에는 사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는 사적인 생활이었다고 회개하며 다시 공적인 생활을 위해 이를 악물고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사적인 생활, 공적인 생활로 왔다갔다하다가 사적인 쪽으로 들어서는 때가 많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공적인 선과는 멀어지는 생활을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회개해야 됩니다. (31-242, 1970.6.4)

여러분, 복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데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만 이쁘다고 하며 대할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31-168, 1970.5.24)

그러면 여러분은 사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아니면 공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일생을 투입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공적인 탕감을 위하여 공적인 환경에 일생을 투입하겠다고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는 창건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순간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는 남아진 때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야 할 시련노정입니다. 그래서 자체의 생활에서 개인적인 생활을 하느냐, 공적인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사고 팔고 하는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또 문제 되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생활이냐 사적인 생활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감정이 사적인 감정이냐 공적인 감정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 맹세해야 합니다. 역사를 탕감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런고로 생활 속에서 사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공적인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자가 중요시해야 할 문제입니다.

죄라는 것은 무엇이냐? 죄는 사적인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도 사적인 기준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것이 도수를 넘게 되면 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넘으면 악하게 되고, 망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선할 수 있고, 영원히 흥할 수 있고, 영원히 복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망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죄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악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그것은 바로 공적인 자리입니다. 밥을 먹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먹어야 합니다. 일을 해도 공적인 일로, 말을 해도 공적인 말로 소화해야 됩니다. 이처럼 일체를 공적인 것과 연관지어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가려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31-164, 197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