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충효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효의 생활

2)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충효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20년 동안을 지내 온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 한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그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18-159, 1967.6.4)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생 동안 충성의 도리에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입장과 환경이 자기를 평하면 평한 것만큼 우리의 무대는 세계로 확대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국내 사정을 중심삼고 뒤넘이치지만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세계를 중심삼고 뒤넘이쳐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모셔 놓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에 안식이 벌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이 세계를 위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세계 만민이 한국으로 말미암아 자기들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다고 충성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맞이하게 될 때, 비로소 한국에는 안식의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155-264, 1965.10.31)

오늘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서 이 역사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고, 혹은 시대적인 때를 우리에게 맞이하게 해줄 수 있는 때가 왔다면 여기에서 충성하는 소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제단 가운데 3대 제물이 있나니 하나는 비둘기요, 하나는 양이요, 하나는 소입니다. 지금 때는 상징적인 형으로 보게 되면 소 시대입니다. 소를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소 시대! 잡아먹기 위해서 좋아할까요? 소를 좋아하는 것은 고기 먹기 위해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농부가 소를 좋아하는 것도 미래에 잡아먹을 고깃덩이가 뭉쳐 있으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려먹기 위해서입니다. 부려먹고 또 고기를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뭣이 돼야 돼요? 돼지가 돼야지요? 「아니요.」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분이 대왕 소와 같은 이런 충성과 지성을 인간을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도 소와 같은 그런 분 앞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소 새끼와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소 새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156-17, 1965.11.2)

이 온 천지간에 나보다 더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거늘, 그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혹은 동쪽이냐, 흑은 서쪽이냐? 어느 곳에 있을 것이냐? 이것을 궁금해해야 됩니다.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궁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충성하는 사람일 것이냐?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냐? 그런 것이 궁금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155-248, 1965.10.31)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데 있어서는 일보도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어떠한 사람, 어떠한 충신, 누구보다도 내가 한 발짝이라도 더, 요만큼이라도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살다 간 영인들, 땅 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간 영인들 이상으로, 그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모든 공적인 일에 열심히 일한 이상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치라도 더 해야 됩니다. 철칙이 그렇습니다. (102-98, 1978.11.26)

종의 시대에 있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양자시대에 있어서 생활 면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2대의 환경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자녀와 일체 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 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땅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한 민족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45-82, 1971.6.13)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그 환경에 있어서 모든 한적인 요건을 여러분의 일신으로써 이것을 탕감·해원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쓰러졌다고 해서 이제는 주님 앞에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참으면서 나온 연고로, 살아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다가 쓰러진 그런 무리는 또다시 일으켜 하늘 앞에 기도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요, 또 지금부터 살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요, 또 그들을 일으켜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153-256, 1964.1.7)

하나님이 보실 때에 민족의 내적 심정을 울릴 수 있고, 천주의 내정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애정을 가진 그 효자 효녀는 깊은 비운이 감도는 자리에서도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된 왕이면 왕, 부모면 부모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그 배후의 전부를 혼자 막아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충효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혼자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당은커녕 지당도 못 갑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지금까지 욕먹고 핍박받아 온 것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총칼을 가지고 복수해서는 안 됩니다. (19-301, 1968.3.10)

여러분이 글씨를 쓸 때에 점을 하나 찍더라도 그때의 마음자세 여하에 따라 기쁠 수 있습니다. 또 그 한 점이 희망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아무리 작은 물건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외로운 입장을 메우고 기쁨을 얻기 위한 대상이므로 그 물건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이요, 충효의 요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건을 지어 놓고 감상하면서 이것은 빼고 이것을 가하면 어떨까 하는 소망 가운데에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내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9-226, 1971.1.15)

하나님을 누가 해방시켜 주느냐?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효자가 나타나가지고 그분의 모든 십자가의 한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런 아들딸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해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101-255, 1978.11.1)

효행의 길을 가는 자기를 보고 용기를 내서 악한 세계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면서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자기에 의해서 생기는 겁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귀한 자리, 보좌, 영광의 자리에 있어서 일생이 아니라 몇 평생을 걸쳐 그 이상의 것을 플러스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기쁨의 하사품일 것입니다.

역사를 넘어서까지 박해에 대해 자기가 맞서겠다고 하는, 그것이 영원의 역사를 대표한 효자 효녀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이 영원한 나라에 대해서 충성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255-122, 1994.3.10)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절대가정, 절대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절대적인 충효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절대성자,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그러한 세계적인 기반이 없으면 하나님이 지상에 강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로서는 지상에서 아무런 역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픈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유럽 멤버들이 처음으로 그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모두 다 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타락한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쌍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어떻게 해방할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은 어떻게 그러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건설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297-203, 1998.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