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의 충효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효의 생활

3) 예수의 충효

예수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죄인들이 악에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는 타락권 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습니까?

또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현현하신 사랑의 화신체였으며, 서러운 골고다의 길에서도 만민의 고통을 염려하신 인내의 주인공이었으며,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하늘에 대해 충성했던 충성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에 대하여 충성했던 그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이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또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2-345, 1957.8.4)

예수는 인류의 아버지로 왔고 성신은 인류의 어머니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육을 중심삼은 부모가 되지 못하고 영적인 부모로만 역사해 왔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영육을 합한 자리에서 사탄에게 승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탄에게 몰려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는 사탄에게 내주고 영만이 부활했던 것입니다. 40일 후에 부활하여 제자들을 모아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제2이스라엘을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2천 년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제1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 제1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제1이스라엘인 유대 나라는 예수를 죽인 죄로 망하고 제2이스라엘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보호하고 육성하여, 4천 년간 수고한 그 공적의 기반 위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민족은 메시아를 받들지 못하고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이 민족은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부터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다시 올 때까지는 독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를 탕감하기 위하여 2천 년 동안 지지리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만인류를 위해, 만민의 조상으로 오신 예수를 형장에 세우고 피를 흘리게 하였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그렇게 고생을 한 것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어디에 내놔도 당당한 권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예수는 이런 국가권 위에 오셔서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복귀하여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아니하고 죽음의 자리로 몰아내어 예수는 어쩔 수 없이 영계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충효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죽음길을 가면서도 만민을 대신하여 천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마 26:39)라고 하면서 충효의 도리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죽었다 할지라도 그 정성의 기준은 사탄이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영적으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이스라엘의 기준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19-207, 1968.1.7)

예수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자리에 나아가 자기의 몸이 찢기고, 자기의 혼이 갈래갈래 찢기는 희생의 길, 사망의 고개를 넘어서면서도 아버지를 붙들고 최후까지 충효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다짐하는 데에 있어서, 사탄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리에서 고이 죽음길을 맞아 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그 자리에서 사탄세계에서 죽어간 어떤 사람보다도 더 위에 설 수 있었던 그 조건이 무엇이냐? 원수에 대해서 복을 빌었다는 사실, 그 조건을 중심삼고 사탄이 그 이상은 침범할 수 없는 방패막이로서 결정을 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는 하늘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아가지고 부활의 권한을 일으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50-201, 1971.11.7)

예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심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 앞에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복중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의 승리적 입장을 재생하여 그 일을 다시 추진시켰던 것입니다. (24-191, 1969.8.10)

본래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참다운 아들이요, 하나님의 왕자요, 또한 만민의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가 태어난 그날부터 하나님의 왕자로 모셨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예수께 경배해야 됩니다. 만왕의 왕이요, 길이길이 온 천주를 지배할 수 있는 하늘의 주권자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가 태어난 그날부터 요셉과 마리아는 그에게 정성을 다하고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모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기 아들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천법으로는 그래야만 되는 겁니다. (16-27, 1965.12.26)

예수는 어찌하여 부모, 즉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늘의 법도를 친히 가르쳐 주지 못했을까요?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부모가 되었을 텐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자의 인연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의 인연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서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220, 196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