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소망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4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의 소망

이제 여러분은 몰리고 천대받아도 '좋습니다!' 해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 : 30)"하시고 말없이 운명하시던 그 모습이 우리 주님의 모습이었고 우리 신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간판, 무슨 교파가 다 필요없게 됩니다. 개개인이 달라도 관계없고 민족이 달라도 관계없는 참다운 이상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망은 온 천주의 이념을 대신한 소망이요, 예수의 사명은 온 우주만물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옛날 사도들이 이런 예수의 뜻을 몰라드렸던 것을 이제 여러분이 알아드려야 되겠습니다.

제1이스라엘인 유대민족이 예수의 심정을 위로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들이 위로해드려야 이 민족이 제 2의 이스라엘민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영원히 믿을 수 있는 개인을 찾았으나 그러한 개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내 그 성신을 중심삼고 제 2차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을 오늘날 기독교를 통해서 다시금 찾아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의 이름만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념은 만민에게 통할 수 있으되 실체는 하나밖에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념을 믿었다고 하는 신앙자는 많되 실체를 믿었다고 하는 신앙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그대의 마음이며, 그대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날까지 맺혀진 하늘의 원한의 심정, 뼈골이 녹아지는 듯한 서러운 심정을 느껴봤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디를 가든 하늘을 대하여 서는 자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졸도한 정도의 심정을 갖고 이 땅 위에서 3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날을 중심으로 하여 심판의 관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심판의 길을 누가 보장하여 줄 것인가? 예수님이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장 못해요. 옛날 이스라엘의 가는 길도 예수님이 보장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택한 선민이 망했던 것과 같이 끝날의 크리스찬들이 가는 길도 예수님이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보장하지 못해요.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보장받을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이 통하고 예수가 온 인류를 품으시려던 그 외로운 심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 정도에서 구원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요구하는 전체의 천국이 건설되는 줄 알고 있는 데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입니다. 영계에 가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뭐 자기가 제일이라고 뽐내는 사람들이 영계에 가보니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된 곡절인가. 오늘날 여러분이 올바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의 종점을 향하여 나아가는 노정에서는 출발지에서 머리카락의 두께만큼만 틀려도 끝에 가서는 수천만리의 거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논리적 지식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내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끌어 당기는 심정의 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최후의 심정적인 중점과 내 심정적인 중점이 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 일생을 걸어놓고 예수의 소원을 풀어드릴 때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개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들로부터 배척받았고, 가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으로부터 배척받았으며, 사회와 교회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와 교회로부터 배척받았고, 국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배척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배척받고 몰림받으면서도 개인과 가정· 교회· 국가를 넘어 오늘날 세계의 무대에까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싸워 나오고 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선교초기에는 어떤 국가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고,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배척받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