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회개해야 됩니다. 내 한 몸에는 거짓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이 거짓이란 이름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혹은 시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교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혈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이 이름들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또 내 마음에는 남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살인적인 요소가 있으니, 이것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담하였고 기독교인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메섹에 가는 도중 예수를 만나 회개했습니다. 우리들이 죽여버린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알았습니다. 죽이는 데에 자신이 찬동했던 스데반이 예수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그는 스테반을 죽인 것을 회개하기보다 민족이 예수를 죽인 것을 회개했습니다. 민족을 세우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을 염려하면서 민족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기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 기간은 기뻐서 혹은 즐거워서 하늘을 노래하던 기간이 아닙니다. 슬프고 슬퍼 눈물을 흘린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은 '예수를 죽였던 모든 죄는 내가 짊어지게 하시옵고, 이 한 일신으로 예수를 죽인 모든 죄를 탕감하게 하시옵소서'하는 복받쳐 오르는 심정으로 하늘 앞에 크나큰 회개를 한 기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간이 있었기에 죽음의 자리도, 어떠한 환경도 개의치 않고 예수의 이름을 갖고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로서 나타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부터 출발되었던고. 죄인임을 느끼고부터였습니다. 4천년 역사 전체를 회상해 보게 될 때 자신이 죄인의 대표자인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죄인이 하늘의 긍휼의 손길에 붙들리다니…….'하는 감격의 한 때를 맞게 된 것입니다.
큰 죄인임을 느끼는 자가 큰 은사에 접하게 될 때 하늘 땅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새로운 복음의 역사로 전환시켰던 것입니다.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느냐? 죄악된 자기를 치고 죄악을 회개한 데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거쳐 승리하여 사울은 하나님이 지어준 본연의 이름을 받아 바울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에게 어떠한 이름을 갖고 있느냐고 하늘은 물을 것입니다. 네 이름은 무슨 이름이냐? 타락하기 전의 아담이더냐? 120년 동안 하늘을 위해 충성했던 노아더냐? 하늘의 뜻을 좇아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아브라함이더냐? 혹은 80년 생애를 민족을 사랑하고 택한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염려의 심정을 가지고 살았던 모세더냐?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슨 이름이 지어져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은 바라고 계십니다. 악의 요소가 침범하기 전의 그 이름을 거쳐 최후에는 예수의 이름까지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예수 말고 십자가를 심판할 수 있는 예수의 이름을 차지하지 않으면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시여, 옛날 타락 전 아담 해와가 머물던 그 자리에 나를 옮겨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 봤습니까?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하고 하나님도 자유롭게 대해 주시던 그 아담 해와의 환경이 그립소이다. 뜻을 받들어 충성을 다해 제물을 드리던 아벨의 마음이 그립소이다. 혹은 노아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아브라함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모세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더 나아 가서는 예수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라고 해 보았습니까?
역사노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악과 싸우던 마음, 하늘을 위하던 그 마음을 갖고 지금까지 더렵혀진 이름을 모두 청산하려는 신념, 청산해 버리기 위한 회개의 눈물이 없이는 예수의 이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혈기가 남아 있으면 여러분의 이름은 혈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시기가 남아 있으면 여러분의 이름은 시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는 그런 이름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아무개 아무개 하는 이름이 아니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