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에 이르지 못한 한 때문에 부활한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0권 PDF전문보기

목표에 이르지 못한 한 때문에 부활한 예수

나는 개인이 아닙니다. 내가 죽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영원히 개인이로되, 살아 있는 생명의 주권과 더불어 있을 때는 개인이 아닙니다. 몰리는 자리, 불쌍한 자리에 처하고, 쇠사슬에 묶여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그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홀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실증을 통하여, 생활을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싸움터에서 쓰러져서 발길로 차이더라도 `이놈아 내가 있으니 낙망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거늘 내일도 그럴것이라는 심정적인 발판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과 인연맺은 사람이라면 옥중에 가도 무지한 백성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줍니다. 몰리어 처마 밑에서 잠자는 신세가 될지라도 그 부락에 양심적이고 천륜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면 밤잠을 안 자고 찾아 헤맬 것이요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찾아 줄 것입니다. 이렇게 전후, 좌우, 상하로 하늘과 관계되어 있는 한, 시대적인 핍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다가 거꾸러지면 일어나서 또 가고 열 번을 거꾸러져도 또 일어나 가고, 만약에 생명이 다하여 쓰러지게 되면 영적으로라도 가야 합니다. 가야 할 곳을 다 가지 못한 한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역사적으로 물리치지 못한 대원수 사탄부대를 우리가 연마한 칼로 쳐서 쓰러뜨리고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탄의 종족이 굴복하는 날까지 행군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눈 앞에 바라보이는 곡절과 만상을 보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 나를 안타까이 보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슬픔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개인의 생애노정을 가면 그만이지만 역사적인 섭리를 품고 나오시는 아버지께서는 내 생애를 지나 미래까지 허덕이셔야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간절히 나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할진대 그 누가 어떻게 안 가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립시다. 영원한 발판이 없는 하나님을 우리들이 위로해 드립시다. 심정의 발판이 없어 애를 태우는 예수의 처참한 모습, 겟세마네동산에서 홀로 찬이슬을 맞으며 풀뿌리를 부여잡고 호소하며 눈물짓던 초초한 예수의 모습, 누가 예수를 그러한 모습으로 만들었습니까? 온 세계 인류가 공히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서서 공동적으로 죄의 탕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소망하였습니다. 그는 믿어 주었습니다. 자기를 못박고 쫓아내는 그 무리들을 믿고 갔습니다. 배반하는 제자들을 믿고 갔습니다. 그렇게 믿었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부활하신 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배반한 자, 역적된 자를 탕감 없이는 다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천륜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어떻게 배반한 제자를 찾아갈 수 있었던고? 빌라도 법정에서도, 최후를 맞는 순간에도 베드로를 믿어 주었습니다. 배반의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베드로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믿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믿어 주었기 때문에 부활한 후에 제자들을 찾아가도 사탄이 반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동기가 되어 제자들을 다시 몰아 지상복귀운동의 선봉에서 깃발을 들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죽기는 매일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스러운 역사적인 원한을 탕감하고 해원해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가더라도 이것을 해결지어야 합니다. 먹어서 안 되거든 굶고라도 가야 되겠고, 입어서 안 되거든 벗고라도 가야 되겠고, 자고서 안 되거든 밤을 새워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남의 신세를 지면 안 됩니다. 만일 신세를 졌을진대 내 피와 땀을 흘리고 내 살과 뼈를 깎아서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 앞에서 천륜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녀의 위신을 백 퍼센트 세울 수 있고, 하늘이 바라는 승리적인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승리의 발판, 승리의 그 발판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리워하시는 줄 아십니까? 학교를 바라보면 학교도, 사회를 바라보면 사회도, 교회를 바라보면 교회도, 어떠한 정당, 어떠한 재단, 어떠한 기구를 보아도 승리의 발판은 다 막혀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