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런데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느냐? 양심이 요구하는 곳, 즉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나아가서 세계적인 양심의 승리자가 남아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양심이 바라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하나님을 인류 앞에 몽땅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메시아다. 그런데 그분 앞에 방해가 많았기에 그분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적인 유랑의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이다.

마음이 원하는 세계를 침범받지 않고 유랑의 길을 간 자가 야곱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승리의 명사를 얻었고 승리한 개인과 승리한 가정을 찾을 수 있었으니, 승리한 자식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을 번식해 나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공세에 하나님이 함께하려 하시었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손길을 거두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죽였기에 하나님의 섭리는 이 나라를 떠나 이방에서 횡적으로 그 토대를 이루어 나왔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다.

방랑하는 나그네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승리한 개인, 가정, 민족이 나올 때 이를 환영해 줄 나라가 어디 있는가? 가는 곳마다 원수다. 예수님이 양심의 승리자로서 모든 것을 주기 위해서 찾아 왔으나 민족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민족이 원수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더욱 극단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이다.

살아 생전에 로마를 정복하고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을 세워야 할 분이 예수님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졌으면, 기독교는 2천년의 역사 속에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역사적인 위인은 믿을 수 있었으되 현실로 등극한 메시아를 보지 못한 이스라엘이 원망스럽다.

통일교회는 몰림받고 뜻을 못 이룬 슬픈 예수님을 믿는 눈물의 교회이다. 십자가는 죄인의 형틀이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당시 메시아를 맞기 위해 방 한 칸, 밥 한 술, 옷 한 벌 준비한 사람이 있었는가?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황태자로서의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4천년 고난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그들을 선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소망은 자신을 잘 믿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천당이 아니다. 천당은 나중에 가는 곳이다. 하나님의 소망은 천주복귀다.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는 충신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한이 남아 있거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퍼부어 주십시오. 지치지 말고 죽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2천년 전 메시아가 오신 뜻은 로마를 중심삼아 세계를 통일하여 뜻 앞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그 한 날을 맞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유랑의 민족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양심의 목적이 해원되는 그날이 속히 와야 한다. 그것은 양심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룬 곳에 오게 된다. 하나님이 비참한 곳을 찾아오시겠는 가?

과학과 종교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끝날이 온다. 끝날에는 산양과 면양을 갈라 놓는다. 면양은 주인을 알고 산양은 주인을 모른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 최고의 사탄이다.

소망하는 나라와 본향은 유랑하는 사람의 목적지다. 어느 곳에 정착하여 근거지를 삼을 것인가? 하나님의 본향 땅과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깃발을 높이 들고 나아가자. 그 일을 한국에서부터 하자는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다.

참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이 일치하는 곳에 있다. 그곳이 어디겠느냐? 교파가 아니라 참사람이 있는 곳이다. 지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각각의 교파가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누가 제일이냐가 문제이다. 끝날에 있어서 제일인 하나님의 옥새를 쥐고 계신 분이 주인이다.

궁궐이나 초막이나 어디든지 예수님을 모신 곳이 천국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황태자로서, 단장되고 꽃향기 드높은, 만세에 빛날 그곳을 찾아 오신다. 예수님은 죽어서 메시아가 되었는가? 살아 있을 때는 메시아가 아니었던가 ?

개인적인 대표, 가정적인 대표, 민족적인 대표가 유랑했고 세계적인 대표가 유랑했다. 예수님이 유랑했기에 끝날에 복귀의 사명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도 유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