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만나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를 만나려면

그런 길을 따라가야 할 우리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민족을 부여안고 몸부림치오니 민족을 버리지 말고, 이 세계를 부여잡고 몸부림치오니 이 세계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심정에까지 도달해야 하겠습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십자가상에 서신 예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는 하늘을 바라보니 앞이 깜깜했던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아도 깜깜했고 만민을 바라보아도 깜깜했다는 거예요. 너무도 깜깜했던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상에서도 한줄기 끓어오르는 마음은‘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 가운데는 '하나님이여 영원히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담 해와로 인하여 인류가 버림당한 것은 당연하지만, 역사적인 심정을 붙들고 수고하신 당신의 수고를 버리지 마시옵고, 당신이 공들인 것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나를 버릴 지라도 당신이 세우고자 하셨던 소망은 버리지 마시옵소서. 이 민족을 통하여 만민을 통치하고자 하신 당신의 이념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하는 벅찬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가도 괜찮지만 당신의 뜻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을 위한 충신의 도리는 세우지 못했사오나 충성된 마음만은 갖고 있습니다. 또한 효자의 도리는 세우지 못했사오나, 효성된 마음만은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는 이런 사람마저도 없는 상황에 저마저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하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자기 개체를 한탄하여 하신 기도가 아닙니다. 역사성을 띤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를 부여안고 호소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념이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거기서 재창조, 부활의 권능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한 것도 사랑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노고를 생각한 것입니다. '저들을 버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됩니까? 제가 천번 만번 죽음의 길을 가더라도 저들을 버리면 하나님의 수고의 공적이 깨져 나갑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4천년만에 왔던 메시아를 우리 선조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분노해야 할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제자들이 행동입니다. 세상의 한 나라를 위해서 가는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거늘, 자기가 섬기던 스승이 죽음의 길을 가는 데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나려면 죽음 길을 자진해 가서야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자 하는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서 부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자리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십자가가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예수의 한이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예수의 한의 실체가 제물이 되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거쳐서 하나님의 한 주권 국가를 세워 가지고 이 세상을 수습해 나오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의 판도를 수습해야 하는 기독교는 예수와 성신의 이름으로 수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와 성신은 다시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긴긴 세월을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을 찾기 위해서 아브라함 가정을 세우던 이상의 수고를 해야하고, 한 민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난을 당하던 이상의 고역을 당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비참한 환경에 떨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사, 2천년 전의 환경을 재현한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왔다 간 예수는 역사적인 실체입니다.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옛날 아담이 소망하던 실체요, 노아 앞에 약속했던 소망의 실체요, 노아의 애달픈 사정을 대신한 실체요, 노아의 심정을 대변하는 실체였던 것이며,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그렇고,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혀를 깨물고 이룰 악물며 참아 나아간 원인은 어디 있었느냐? 그는 역사를 걸어 놓고 마음속으로 호소했습니다. '나는 아담과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습니다. 이 땅에 불신의 씨를 뿌린 아담과 같이는 되지 않겠습니다. 사랑해야 할 동생을 죽인 가인과 같이는 되지 않겠습니다. 죽일 수 있는 자리에서도 용서해 주겠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