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심정과 그 슬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의 심정과 그 슬픔

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세 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 먼저는 국토가 없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주권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국가의 민족은 어떤 민족인가 하면, 역사 가운데 전통을 북돋아온 이스라엘 민족이며 국토는 축복받은 가나안 땅이다. 그리고 주권을 세우는 중심인물이 국가적, 전체적 지도자로 서야 하는 데, 그러한 목적을 위해 보내진 분이 메시아였다.

메시아는 죽어서 영적인 만민의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 만능의 왕자로서,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의 중심으로서, 또 로마의 중심으로서 보내어졌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축복받을 때 고향 땅에서 불림받아 무조건 보내어졌다. 야곱은 축복을 받고서 자기의 고향을 버리고 원수가 있는 땅으로 들어갔다. 모세도 그러했다. 축복을 약속받고 광야에 보내어졌다.

그와 같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고, 절대적 가나안 땅을 결정하고, 절대적 이스라엘 민족을 결정하고, 절대적 이스라엘 주권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최대의 사람을 세워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문화, 즉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이념을, 그리고 국가적 전통을, 그리고 그 시대의 지상 전체를 움직이고 있던 세계적인 중심이 로마를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언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신을 나타낸 일이 있었는가? 만민의 왕으로서 자신의 명령을 들으라고 하시며 명령하신 적이 있었는가? 하늘 아버지의 독생자로 탄생하셨던 메시아를 향해 지상의 어느 누가 ‘참으로 당신은 하늘의 왕자이십니다’하며 모신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 개인도 없었거니와 가정도 없었다. 씨족도 없었거니와 민족도 없었다. 민족이 없었으니 국가가 있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지상에 오셔서 일개인에 대한 완전한 가르침 하나도 전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에게 완전한 가르침을 말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 어떻게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말할 수가 있었을 것인가. 가정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 어떻게 민족, 국가, 세계를 대해서 그 가르침을 말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예수님의 내면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따라, 혹은 빵을 얻고자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는 자도 있었을지 모른다. 천천만만의 여러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모여 왔었지만, 예수님의 참된 심정을 알아 ‘나는 당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결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흠모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한 사람이 없었으니 그런 가정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런 가정이 없었으니 물론 민족도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예수님은 비참하고 처량한,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입장에서 생애를 보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를 보더라도 그렇지 않았던가. 3인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간의 희비애락을 함께하였고 스승을 사모하면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고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에서의 세 번의 기도 때마다 그들은 졸고 말았다.

그것이 예수님을 흠모해 오던 제자들의 최후의 결과였다. 예수님은 죽음을 결정하든가, 혹은 삶을 택하든가 하는 기도를 하시며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셨던 것이다. 그런 기도를 세 번씩이나 반복하셨던 것이다.

십자가에 죽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그 시간에마저, 예수님과 일체가 되지 못했던 제자들이 예수님 대신 죽는 다고 하는 자리에 설 수는 없었다. 약속을 정하는 그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약속을 이행하는 지도자의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혔을 때에는 다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4천년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보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