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것을 구하기 위하여 자식에게 채찍을 드시는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6권 PDF전문보기

더 큰 것을 구하기 위하여 자식에게 채찍을 드시는 하나님

인간의 비참한 일이 하나님의 심정에 비추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욱 슬프고 비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보다 더 비참하였고, 어떤 민족보다도, 어떤 국가보다도, 어떤 세계보다도 더 비참하였습니다. 아무리 비참한 입장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비참한 자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어머니보다 더 애달픈 심정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보아 오셨습니다.

오늘날의 이 비참하고 악한 세계를 청산하고, 선의 세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입니다.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인류는 탕감조건을 세워서 복귀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은 새로운 진리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들로부터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타락한 인간들을 본연의 세계로 탕감복귀해야 되는 사명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보다도 더 비참한 환경으로 그들을 몰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쳐서 가정을 구했습니다. 더 큰 것을 구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자를 치지 않고 대신 세움받은 그 아들딸들을 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큰 것을 구하기 위해서 자식에게 채찍을 든 하나님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애달프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에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동반되었고, 또 그들은 다른 민족들을 대신하여 맞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비참한 민족에게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역사와 천주의 소망이었으므로 4천년 역사나 그 어떤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비참한 자리, 즉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정체도 드러내지 못하고 피난 가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를 위하여 충성을 다 해야 할 대제사장과 교법사들은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인류역사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대신하였던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원리를 떠나서 개인의 사정을 보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이 운명하기 직전까지도 그를 직접 보호하시지 못하고 버리는 입장에 서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 :46)"하고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이 무심한 것 같은 입장을 취하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려고만 들었다면 백 퍼센트 배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비참한 사정을 인정으로써 대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었으니, 예수님이 비참했던 것보다 하나님은 더 비참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할 때에 '오, 내 아들아 ? 하는 응답만 있었더라도 예수님은 기쁘게 죽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