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욕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7권 PDF전문보기

수욕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는

여러분, 오늘 말씀 제목이 `수욕의 상처'지요. `수욕(受辱)'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욕이 뭐냐? 수치입니다, 수치. 이 수치가 뭐냐 하면, 참인데도 불구하고 참되지 못한 입장의 대우를 받으면 거기에서 수치가 생기는 것이요, 또한 거기에서 부끄러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과 수치가 정말 그렇다고 공인되면 그것은 욕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 참된 입장을 완전히 부정당하게 될 때 거기에 수욕이라는 말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그 상태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은 무한한 고통이요, 무한한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한다면, 자식이 부모 앞에 둘도 없는 효자로서 `효자의 도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할 정도로 효성을 다하여 그로 말미암아 부모가 기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부모와 자식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에 있는 효자인데도 불구하고 효자가 아닌 것처럼 공격을 받고 참효자의 자리를 되물려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될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치욕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하나된 효자의 가치가 천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욕이 된 입장에 있는 사람의 수욕의 상처 역시 그만큼 깊은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그 이상의 자리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 이상의 자리로 올라서는 데는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자식의 마음에 고개가 생기고, 부모의 마음에 고개가 생깁니다. 두 고개의 경계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도 두 경계선의 입장이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두 경계선의 위치가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냥 두면 결국은 영원히 분립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경계선을 일치화시킬 수 있을 것이냐? 일치화만 시켜 가지고도 안 됩니다. 경계선을 일치화시키고,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래의 상태로 복귀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효자가 부모의 마음을 상심하게 했다면, 부모에게서 그 상심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옛날에 효도하던 기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행동하던 것 가지고는 안 돼요. 지금까지 효의 표준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감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효의 표준이라고 믿었던 자신을 다시 한번 비판해야 됩니다. 비판하고 감별해야 할 여건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의 효의 기준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효의 기준을 상회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부모가 입은 수욕의 상처를 씻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한 나라의 군신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왕과 충신이 사이에 있어서 신하가 군왕으로부터 `충신의 도리가 바로 이것이다. 너야 말로 나의 충신이다. 너는 우리의 영광이요, 너와 나의 관계는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수 있는 관계요 인연이다'라는 칭찬을 받던 자리에서 `네가 이럴 줄 몰랐다' 할 수 있는 변절자의 모습으로 대두되게 될 때 그 군왕이 입은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옛날의 충신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옛날보다 몇백 배 이상의 충성을 하고, 몇천 배 이상의 신의의 도리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군왕의 마음을 돌이키기가 힘들지요. 옛날보다 천 배 이상의 충성을 다하더라도 상처입은 군왕의 마음을 돌이키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군왕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군왕은 그것을 천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신하에 대한 믿음의 강하고 바라는 바가 컸다면 큰 만큼, 거기에 비례하여 그보다 몇천만 배의 큰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그 아픈 마음을 항시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보다 몇천 배 몇만 배의 충성을 하여 군왕의 그 아픈 마음을 다시 풀어 드리고, 군왕이 입은 수욕의 상처를 씻어 드리지 않고는 옛날의 충신의 자리를 회복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