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를 든다고 하는 것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8권 PDF전문보기

봉화를 든다고 하는 것은

그러면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이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지금의 세계를 쳐부수고, 없애 버리고 어떤 특정한 계급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되겠느냐? 그런 세계는 이상세계가 아닙니다. 그러한 특정한 계급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이 세계가 바라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봉화를 들어야 합니다. 봉화를 든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와 더불어 사는 것은 국가 단위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도 세계와 더불어 살고 싶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 배후의 내용을 지닌 것은 종교뿐입니다. 기독교는 세계를 기독교화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나왔습니다. 회회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 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만약 불교의 사상이 인도를 중심한 국가 목적만을 협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왔다면, 불교는 벌써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장하는 진리의 내용이 세계성을 띠었기 때문에 국가는 망하더라도 그 내용은 국가의 한계를 넘어 세계의 생활권에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생활권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에 비례하여 역사적인 발전을 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4대종교입니다. 불교도 그렇고 유교도 그렇습니다. 공자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선과 하늘을 위해서는 자기 개체를 희생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을 부정하지 않았고, 선(善)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배후를 가진 조직체가 국가요, 거기에 관련된 것이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세계의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빠른 터전이 종교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이 이런 문제를 제시하기 위해 지금부터 수십년 전에 고고한 모습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친구도 없었고, 동지도 없었고, 그 누구도 같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 무엇과 더불어 살려고 했느냐?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과정의 세계가 아니라 앞으로 영윈히 남아질 수 있는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심정문제라든가 하나님이 제시하는 참된 진리와 참된 인격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러한 방대한 내용을 주장하며 왜 하필 종교를 세워 나와야 되는 가 하는 내용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떤 종교여야 되는 가? 먼저 사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돈을 가지고 산다는 사람은 끝장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당장 죽게 됐는데도 백만원을 예금한 예금통장을 딱 붙들고 '아버지가 죽어도 통장은 내놓을 수 없다'고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은 인륜상 남아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물어 가는 석양 빛처럼 지구의 한계선을 넘어 먼 데로 먼 데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 위의 인류가 원치 않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간 방의 집이라도 자기 부모가 죽게 됐으면, 거지가 되더라도 그 집을 팔아 부모를 살리고 간호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볼 때, 결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이 문제냐? 어떤 사람한테 20대의 아들과 60대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고 했을 때에, 이 나라 이 민족을 더욱 위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젊은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도리이지 나이 많은 부모는 이왕지사 돌아가실 건데…'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이익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보면 부모는 젊은 자식을 위해서 모든 희망을 걸고 여기에 주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을 보호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동네에서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