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8권 PDF전문보기

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람은 누구나 가정의 일도 다 하면서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그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 택일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즉, 타락한 우리 인간은 보다 큰 선을 추구해 나가야 할 급박한 운명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선의 실적보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의 실적이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것을 더 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자기 가정이나 종족을 위주한 인격자가 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인격자가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 자체는 보다 큰 분야에서 공헌할 수 있는 중심적인 인물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님 또한 보다 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가정이 선하기를 바라실 것이냐, 국가가 선하기를 바라실 것이냐? 국가가 선하기를 바라 시는 것입니다. 더 큰 세계가 선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내 개체는 그 중심을 어디에 세울 것이냐? 어디를 목적으로 하고 설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그 목적과 더불어 나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에 살았다 하는 그 사실이 평범하지 않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했던 그 목적 기준에 도달했을 때에는, 지나온 그 모든 것이 비참한 타락의 여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참했던 모든 과거지사가 도리어 그날에 있어서는 영광의 조건이요, 자극적인 상징의 여건으로서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남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 만민의 구세주로 오셔서 피흘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보아도 처참한 사실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아도 비참한 사실입니다. 물론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비참한 내용이었지만, 그 비참한 내용이 오늘날 기독교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는 일이 비참하고 가는 길이 어렵다는 사실을 놓고 통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할 길을 놓고, 통일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통일교회 자체가 '이렇게 했습니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단체가 크면 클수록, 구성요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아시아를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진실 그 자체만을 거쳐 나왔고, 그 자체가 결과가 될 수 있는 길을 거쳐 나왔어야 됩니다. 과거에도 그러한 참된 길을 걸어 나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렇게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저는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할 때, '옳소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 할 때는 부정적인 입장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