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을 찾아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참된 의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2권 PDF전문보기

아들딸을 찾아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참된 의미

그러한 존재가 하늘과 땅,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의 인연을 중심삼은 환경이나 생활권 가운데에서 결정될 수 있는 한날을 어떻게 우리의 생애노정에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심정세계를 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망이 무엇이며, 최고의 희망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를 자신의 품에 품으려고 하시는 것도 아니요, 하늘과 땅을 자신의 권세로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외적인 모든 상대적 여건이 아무리 풍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는 간접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오직 기쁨으로 포괄할 수 있고, 기쁨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운동의 중심, 즉 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승리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시대를 포괄할 수 있는 주체권, 이것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정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것은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에 앞서 통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과 참된 딸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시대 환경을 개척하여 시대의 중심 자리에 설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이끌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끌고 나올 때 끌려나올 수 있는 심정적인 유대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얼마나 일체적 관계를 갖고 있느냐? 개인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인간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세계가 굴복했던 안 했든, 혹은 시대와 환경이 수습되었든 안 되었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낼 수 있고, 전체의 마음을 대표한 하나의 상대로 나타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가장 영광된 자리에 나갔다고 하더라도 그 영광을 영원히 품고 영원히 위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느냐? 그 자리는 자기 혼자 모든 영광을 바라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기쁜 마음이 넘쳐나 가지고 그 영광이 환경 전체를 덮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여야 됩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가치 있는 기반이 개재되어야 모든 환경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주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재되지 않고는 세속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랑은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요, 시대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수고로운 것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어려운 환경도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힘은 강하기 때문에, 그 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히더라도 능히 소화시킬 수 있고, 능히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힘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와 떨어진 사랑을 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분리된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미래에 올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출발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태어나서 생애 노정을 거치는 가운데, 즉 나면서부터 죽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사랑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을 통해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하는데 있어서 그때가 생애의 3분의 1의 기간에 해당된다면,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슬픔의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생애의 절반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한 생활을 하였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생애는 부끄러운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부끄러운 생애와 슬픔의 생애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맺어진 사랑이 몇 퍼센트이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미완성적 사랑에서 역사가 흘러나와 지금도 그런 시대권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백 퍼센트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경지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그에게는 아들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랄 필요도 없으며, 하나님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찾아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라야 영원히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수습해야할 내용을 남긴 자리에 서게 된다면 영원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수습되어서 절대적인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영원한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