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양심작용의 주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3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은 양심작용의 주체

운동이란 것도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적 존재가 없이 운동하는 법이 없습니다.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양심작용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힘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기 전에는 관계맺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과학세계는 우주는 힘,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에너지가 우주의 근본이냐? 아닙니다. 그 에너지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론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작용이 있어야 되고, 그 작용이 있기 전에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이 주체와 대상은 인간 자체에서 만들어진 주체와 대상이 아닙니다.

힘 자체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용을 하려면 그 힘을 작용 시킬 수 있는 회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 가지고는 힘은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도 동맥 정맥과 같은 순환기관이 있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적인 상응관계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존재하기 이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주체와 대상이 있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무엇이 먼저인가? 이 세상은 선후관계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인가 하는 ….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 것처럼 동식물도 모두 자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주체인가? 지금 이것이 혼돈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뒤집어져야 됩니다. 손을 놓고 볼 때, 오른손과 왼손은 이렇게 보면 마찬 가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른손과 왼손은 그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는 오른쪽이요, 하나는 왼쪽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모양은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이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그 바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탕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입니다. 이성성상 가운데는 본성상과 본형상이 있어야 됩니다.

양심작용도 작용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의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화학실험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도 전부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관계만 성립되면 당장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대적 관계와 상충적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상충이란 무엇인가?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충관계입니다. 이런 상극이라든가 상충작용을 중심삼고 공산주의자들은 변증법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상극이 나쁜 것인가? 상극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극이 있지 않으면 원형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가 서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만 되지 원형은 안 되는 것입니다. 자장을 보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잡아당깁니다. 이렇게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이 되어야할 텐데 왜 원형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서로 상극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원형운동과 구형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접적 작용의 반작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든간에 사람에 게는 전부다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떻게 생겼느냐? 어떻게 생기긴 어떻게 생겼습니까. 잘 생겼지요. 여러분의 얼굴같이 생겼습니다. 양심과 얼굴은 안팎이라는 것입니다. 안팎은 같습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은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주체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양심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한 플러스는 휘익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정성들였어요? 여러분들은 정성들일 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 정성들였어요?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들어가게 되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직선이던 것이 점점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반응이 오고, 안테나를 통해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힘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불이 온다고 그러지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라디오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냐에 따라서 먼 거리에서 오는 전파를 깨끗하게 변환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완전한 플러스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없다면 하나님도 고독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수고하시며 나오고 계시지만 수고하는 그 가운데 인간들이 몸부림치면서 잘못했다고 회개도 하고 하니까 낙심하셨다가도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앞날에 인간을 중심삼은 최고의 선의 세계를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크나큰 소망을 중심삼고 나오십니다. 과정에서는 개척이요, 혁신이요, 발전이요, 개혁입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봄날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