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더라도 묵묵히 세계를 위해 살아 보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어렵더라도 묵묵히 세계를 위해 살아 보라

그러면 여러분이 세계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동네면 동네를 위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한번 살아 보자 하고 몇해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 계획대로 해서 동네가 번영하나 안 하나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동네에 피해만 끼치던 건달패 녀석이 이제 통일교회에 가서 뭘 하겠다고 하느냐 하면서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코웃음을 칠 테면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없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그러면 맨 먼저 그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그 앞에 와서 고맙다고 고개 숙이며 인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해보라는 것입니다. 3년 이상만 그렇게 하면 그 마을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서 그것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이 노동판에 들어왔으니 여기에 있는 무리들을 얼마 동안에 내 손아귀에 집어 넣을 것이냐 하는 생각을 했고, 거기에 대한 계획을 세워서 6개월이면 6개월 동안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계획대로 했습니다. 그들을 내 제자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느냐, 또 그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냐를 알아서 그것을 중심삼고 그들을 상대하면 제일 빠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갖다 주면 좋아서 입을 벌리고, 제일 어려운 것을 도와주면 고맙다고 고개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거예요. 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느냐? 제일 원망스러워할 때에는 어떻게 대해 주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헤쳐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싸움을 통해서 그 싫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갑이라는 사람을 가만히 보니 나를 미워합니다. 그런데 그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은 좋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갑이라는 사람이 보는 데에서 을하고 싸움을 하는 겁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을이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할 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갑이라는 사람은 누구편을 들겠어요? 을의 편을 들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싸움을 해서라도 그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덮어주고 그를 이해해 주면서 자기가 손해보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사람 편에 있던 사람은 틀림없이 내편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공적인 입장에서 손해보는 사람을 편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학교에서도 가만히 보면 주먹 깨나 써서 학급에 문제시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이 때릴 때는 오히려 맞는 것이 좋습니다. 맞는 것이 억울한 입장이지만 오히려 그에게 양보하고, 그를 위해서 선의의 입장에서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면 환경은 맞은 사람을 중심삼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변명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종교인이 가는 길에는 변명이나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파괴분자입니다. 변명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불효자입니다. 그저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 책임을 못 했는데 변명할 수가 있습니까? 개인이 가는 길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개인이 가는 길에서 변명한다면 가정을 중심삼고는 얼마나 변명이 많겠어요? 개인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그 환경에서도 어려움이 많다고 불평을 한다면, 더 어려움이 많은 가정을 중심삼은 생활 환경에서는 얼마나 변명이 많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려운 여건이 첩첩이 가로막히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은 불평과 변명에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묵묵히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