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시련을 이겨내고 시작한 승공교육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여러 시련을 이겨내고 시작한 승공교육

원래는 교육을 4월 7일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이 날은 선생님이 이북에서 공산당들에게 공판을 받은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4월 7일부터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때렸지만, 한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환영할 수 있는 때를 맞았기 때문에 4월 7일로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짜에 시작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는데, 난데없이 반공연맹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즉 가인이 나온 것입니다. 복귀원칙에 의해서 승공연합 앞에도 가인 입장의 단체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아벨 앞에 가인이 없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우리가 교육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제까지 계획한 전부를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자기네 반공연맹은 세계적인 기반이 있고, 국가적으로도 정부의 한 관서와 같이 책임을 하고 있는데, 왜 자기들을 놔두고 나라의 위신도 생각지 않고 개인이 하는 사회단체를 끌어들여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느냐고 하면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수련을 준비하던 사람들, 정보부로부터 치안국의 국장 과장들이 전부 다 문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를 집어먹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도 가운데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먼저 알았기 때문에 아시아 승공대회를 개최하도록 했습니다. 먼저 승공이론을 가지고 방대한 아시아에 기반을 닦기 위해 아시아 승공대회를 서둘러서 개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작전을 하여 3주일 이내에 그들을 다 격파했습니다. 그런 말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나서 2개월이 연장된 6월 15일부터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싸움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저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선생님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결전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치안국장의 총책임하에서 모든 감시를 벗어났고, 정보부 사무국장이라든가 치안국장이 점심을 산다 저녁을 산다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치안국장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잘 알거든요.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국내에서나 외국에서 하고 있는 활동 같은 것을 전체적으로 조사해 보니 어떤 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책임소관이 치안국이다 보니 자기가 총책임을 지고 전체를 수습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6월 15일부터 승공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