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느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7권 PDF전문보기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느냐

여러분은 뜻을 위해서 얼마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까? 여러분이 임지에 돌아가게 되면 현지의 자기 입장에서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수들이 `뜻을 위한다면 한번 해봐라' 하고 시련을 주게 되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깊은 시련이 있더라도, 악어 떼가 입을 벌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힘을 다하여 달리는 맹수처럼 뜻을 위해 각오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원수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고, 수많은 인간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특권적인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님과의 신의를 세우고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사탄이 그런 절개를 시험해 보고자 할 때 원수들의 총칼에 의해 몸뚱이가 벌집이 되더라도 당당코 뚫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용서도 없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라면 비난과 비소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의 비난과 비소를 받으면서도 죽기를 각오했던 운명을 지닌 자체인데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입장이라면 하나님께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의(信義)의 법도를 생애노정 위에 공고히 닦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을 남기고 가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돌아갈래야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 손목을 잡고 울고불고하는 데서 생명을 버릴 것이냐? 아닙니다. 원수들이 죽인다고 하더라도 감사하며 자진해서 도의 길을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저의 생명을 맡아 주십시오. 제 생명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오니 십자가의 고빗길도 기꺼이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의 후손인 여러분은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원한을 해원하는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본향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늘로 가는 노정인 것을 알고 기필코 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특사로서,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씨족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 믿음의 절개를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칭찬해 줄는지 모르지만, 칭찬받기를 바라지 않고 가는 길이 되어야 믿음을 증거시킬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만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겠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명을 다하며 별의별 수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지옥 같았지만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하며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내 가슴에 붉은 총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퍼런 창끝에 찔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평입니까?

제1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 16:26)"라는 말씀은 천하보다 귀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이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는 그 생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절대자에게 봉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조 가운데 제1조입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4백년간 로마제국 지배하에서 사자 밥이 되고 호랑이 밥이 되어 쓰러졌지만, 예수님을 기준하여 천대받았기 때문에 탕감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놀라우신 길을 체험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따라갈 수 있는 영광을 무엇으로 보답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하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겠지만 생명을 바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가 보세요. 생명을 바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있나 없나. 신앙의 본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사지에 들어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빗길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설 때마다 구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결의를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적 기사가 벌어진 자리가 현세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생명을 저울질하는 마당에 물질을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뜻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으면서 나왔습니까? 그런 결심을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