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중심삼은 섭리와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8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을 중시삼은 섭리와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느냐? 현재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루려 하던 뜻, 그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올 때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시 이루어야 할 때를 소망으로 남기고 가셨기 때문에 그 소망의 기점을, 그 소망의 때를, 그 소망의 터전을 우리들이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준비하셨던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는 영적인 이스라엘 나라가 아닙니다. 땅 위에 하나의 주권을 갖고 있고 땅 위에 하나의 민족을 갖고 있는 동시에 땅위에 하나의 정신적인 중심인 유대교를 갖고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유대교를 중심삼아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하나의 씨족을 세웠습니다. 그 씨족이 어떤 씨족이냐 하면 요셉 씨족입니다. 요셉 일가를 유대교의 중심 되는 하나의 씨족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유대교의 중심 씨족으로 세워진 요셉 가정은 유대 나라의 중심이요, 교회의 중심이요, 씨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맞는 데 있어서는 마리아와 요셉은 물론이고 요셉 일가 전체가 그때의 이스라엘 사람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신봉하는 어떠한 교인보다도 정성 어린 마음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메시아를 바라던 그 누구보다도 기쁜 자리에서 예수를 맞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 요셉 씨족이 예수를 기쁜 자리에서 맞았느냐? 성경을 보면 그들은 그렇게 맞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모인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했을 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 가운데는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한의 심정이, 모친인 마리아가 교회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씨족을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의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못한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친까지도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친척들은 물론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이 미쳤다고 소문을 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오셨지만 이스라엘 나라가 배반하고, 유대교를 중심삼아 찾아오셨지만 유대교가 배반하고,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찾아오셨지만 요셉 가정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자신도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적인 입장에서 자기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의 법도를 세우고 하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을 닦아 줬어야 할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책임을 못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인 마리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요셉을 수습하고 그 형제들을 수습하고 친척들을 수습하고 유대교를 수습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예수님의 휘하에 들였더라면 그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아벨적인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으면 예수님은 그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로마를 대해 가인 아벨 기준의 복귀를 시킬 것이 아니라 아랍권을 중심으로 그때에 같은 말을 쓰는 이방의 사람들을 전부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복귀시키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옛날 이스라엘의 족속들로 같은 혈족이었다 이겁니다.

이들을 가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복귀하여 아랍권을 통일시켰더라면 로마는 틀림없이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천국이념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셨더랬는데 이러한 예수님의 뜻 앞에 있어서, 또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의 뜻 앞에 있어서 지상의 터전을 갖추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갈래야 갈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 앞에 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품고 뜻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원치 않았던 비참한 운명이 자기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 자신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애달픈 마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간곡하고도 피어린 기도를 하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환경적으로 기울어져 이 길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임을 아시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육적인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영적인 이스라엘까지도 잃어버리게 되어 하나님의 4천년 역사는 안팎으로 실패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승리의 기반이라도 지상에 남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자녀, 영적인 가정, 영적인 종족, 영적인 국가, 영적인 세계형을 표방하고 남겨야 할 입장에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해 가지고 새로이 섭리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이 기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