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리에서 위해야 하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2권 PDF전문보기

어떤 자리에서 위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위할 때는 바깥에서 위할 것이냐, 안에서 위할 것이냐 이것이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바깥에서 하지 말고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너희를 위하는 것은, 내 좋은 것을 너희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가려주고 슬플 때에는 위로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보다 더 수고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로잡아 주는 겁니다. 이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것은 바깥에서 위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 자식들이 어려울 때 위해 주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 중심된 자리에 있으면서 위해 준다는 사실이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된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죽는다. 비틀비틀거리는 것을 보면 그냥 내쫓아 버리고 싶지만 쫓아 버리면 멸망하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귀한 것이 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위하지 않아도 될 입장에 있는 그분이 위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부모의 마음이 나오고 하나님의 마음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차원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자리는 하나님이 움직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계 인류의 중심에 서서 수많은 사람을 위해 주고 복을 빌어 주면서 만인이 좋을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때문에 만민이 그를 좋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대하다 보니 겨울이 되더라도 내 앞에는 춘 하 추 3시절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낙심한 자리에서도 그 사람만 보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다는 겁니다. 외아들을 잃은 부모가 있다면 그는 동네에서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김삿갓처럼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삼천리 반도를 여행하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여행을 하면서 이 사람 사정, 저 사람 사정을 들어 보면 자기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돈이라도 있어서 삼천리 반도를 여행이라도 하지만, 나보다 더 비참하게 망해 가지고 쪼그라져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겨울철과 같은 때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전체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왔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축 늘어져 가지고 '뜻이고 뭣이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저거, 저거 좀 봐라. 선배들이 저러고 있다'고 합니다. 씨를 뿌리면 떡잎이 나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은 떡잎입니다. 배추가 크려면 떡잎이 커야 되지요? 그렇잖아요?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자체가 크려면 그런 떡잎들이 많이 생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떡잎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나는 저 사람들 보니 못 믿겠다' 하면 그것은 떡잎보다도 더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중심이 되어 떡잎을 만들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체를 대신해서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나서게 될 때 그 사람은 떡잎과 같이 고충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 면에서는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한 면을 보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지만, 다른 한 면에서는 여전히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봄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그 봄절기를 찾아갈 줄 알고,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