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나가야 할 신부의 책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나가야 할 신부의 책임

이 일을 하는 데는 개인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중심 삼고 할 수 있으면 간단하겠지만, 개인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을 갖고 온 주님 앞에 부름받아 나갈 수 있는 신부와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부도 역사적인 승리의 진에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승리권에 선 신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입장의 신부를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신랑과 신부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어야 됩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질 때에 거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맨 먼저요, 해와가 그 다음이고, 아담이 그 다음이며 만물이 맨 나중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도 아담과 해와가 나란히 서서 올라갈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가 나란히 서서 갈 수 없으면 누가 앞장서야 되느냐? 사탄과 싸워야 할 아담의 입장에 있는 주님이 앞장을 서서 책임을 지고, 그 상대되는 해와는 주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주님이 가시는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따라 나가지 않으면 해방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신랑과 신부가 횡적 관계, 좌우관계가 아닌 전후관계에 서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부는 신랑 되시는 주님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하나님 아버지 대신으로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오빠 대신으로 알아야 되며, 신랑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음받았기 때문에, 장래에 실체를 쓴 하나님, 즉 하나님의 몸이 되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일체 되는 몸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분은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입장이요, 오빠 중의 오빠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오빠로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신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담이 태어날때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고 해와의 오빠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실체로 오신 주님은 신부 앞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신부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오빠로서 누이 동생과 같은 입장에 있는 신부의 갈 길을 인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버이의 사랑과 오빠의 사랑, 두 사랑을 전부 체험한 자리에 선 해와와 더불어 비로소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들이 바라는 신랑 되는 주님이 오면, 그 주님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할 신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이 아버지 대신이며 오빠 대신이라는 심정적 인연을 맺은 후에 신랑으로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입장에 선 해와가 주님을 신랑으로 맞기 위해서는 아버지로 모셔야 되고, 또 오빠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분이 아버지이시니 나는 효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요, 그분이 오빠이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오빠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는 길 앞에 반대되는 입장에 설 순 없는 것이 형제의 인연입니다. 아담은 물론이고, 해와도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이 죽을 자리에 가게 되면 해와도 그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사지사판의 길을 갈 때에는 부모도 죽을 자리를 가는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심정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이나 형제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느끼는 바인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과 우리, 혹은 예수님과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인 동시에 아버지와 오빠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