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수난의 정상에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여러분은 수난의 정상에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가

아버지께서 그 가정을 대할 적마다 기쁘시고 소망이 싹트고 희망이 깃들고 사랑이 움틀 수 있는 그러한 가정이 되고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할래야 대할 수도 없는 자식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로서 하나님이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하실 수 있고 골수가 움직일 수 있는 정에 얽혀 뗄래야 뗄수 없는 부자의 정을 지녀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원수의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인연 속에서 심정을 가지고 대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실 수 없는 비통함을 가져온 것이 타락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타락의 자리에서 나를 돌이키기 위한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라고 해도 하늘을 향하여 정면을 바라 보고 갈 수 없는 입장이요, 하늘을 향해 돌아설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늘을 향해 갈 수 없는 구속된 입장에 있는 인간인 것을 여러 분이 알아야 됩니다.

본래 하나님이 불러 줄 수 있는 인간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타락된 이 자리에 있는 인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불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본연의 기준인데, 그 기준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이 사망권내를 뚫고 나가야 되는 하나님의 신세가 얼마나 비참하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창조원칙을 중심삼고 인간과 부자의 인연을 맺고 있기에, 자식을 찾아가는 길 앞에 위신과 체면을 생각할 수 없는 부모의 자리에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위신은 실추될 대로 실추되고 밟힐 대로 밟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신은 말할 수 없는 사탄의 수난권내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천덕꾸러기와 같은 입장이 되었지만, 그것을 참으시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오시는 부모의 입장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천신만고하여 자식을 찾아 나오시는 걸음 가운데 잃어버린 자식을 만나기까지의 그 애�㉯슉� 크겠지만….(녹음이 잠시 중단됨)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심정 적인 수난의 길을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어떠한 외적인 수난이나 외적인 핍박을 받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심정에 엇갈린 원한의 행각의 노정을 걸으시면서 그 누구에게도 한할래야 한할 수 없는, 한탄을 하면 도리어 그것이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요건이 되고, 원망을 하면 원망하는 모든 내용이 인간 앞에 복이 되고 인간 앞에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탄이 하나님을 참소할 수 있는 원한의 노정으로 남아지기 때문에, 한의 심정을 품었지만 한의 심정을 표시할 수 없고, 원한의 심정을 품었지만 원한의 심정을 표시할 수 없고, 슬퍼도 슬픔을 표시할 수 없고, 괴로와도 그 괴로움을 표시할 수 없고, 억울해도 그 억울함을 표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그러한 표시를 하면 할수록 사탄이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본래의 창조원칙으로 볼 때 당신은 인간을 대하여 기뻐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슬퍼하는 입장에 서 있으니 당신의 아들을 찾을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신은 당신의 마음 가운데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내고 기뻐하는 심정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인간을 대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한 본래의 창조원칙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죽은 아들을 보고도 슬퍼할 수 없고, 외로와하는 아들딸을 보고도 외로와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참소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입장에서 복귀의 노정을 개척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수난의 길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역사를 해 오시는 가운데에서 사탄 앞에 수많은 개인을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또한 가정이 희생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희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희생되었고, 또 2천년 동안 기독교가 희생되었지만, 이 희생되어진 무리를 붙들고 사탄 앞에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이요, 사탄을 대하여 원한의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무리가 희생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자신과 관계없는 듯 무심한 심정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은 그 어떠한 고통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수난의 정상에 처해 계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은 역사과정을 내려오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