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남아진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6권 PDF전문보기

뜻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남아진다

오늘이 7월 18일이니까 내일 모레면 전국 식구들이 동원되는 날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동원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기간만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배가의 노력을 하라구요. 자기의 직장 외에 나라를 위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책임지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공식적인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위의 자리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이중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낮에 그 일을 못 했으면 밤잠을 안 자고라도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실체가 못 되거든 그림자라도 되어라 그 말입니다. 알겠어요?

신문사에 있는 사람들은 신문사의 책임만 다하면 되느냐? 천만에요. 천만에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교직자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면 되느냐? 천만에요. 사업가로서의 책임을 또 해야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냐?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 앞으로 잘못하면 브레이크를 걸어야 됩니다. 세계를 지도하는 사상적인 면에서 잘못할 때에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됩니다. 이렇게 범위를 넓혀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해서는 신념을 가져라. 어영부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되는데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불평하기 전에 내 할 일을 다했느냐고 자문자답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바라보고 이러쿵저러쿵 비교하기 전에 내가 비교의 기준이 됐느냐를 자문자답하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으라는 거예요. 자문자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금년에는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헙회기구를 재편성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생활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되느냐?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떡 대하면 그 사람의 생활기준을 아는 거라구요. 그 사람을 대해 가지고 주고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털고 나서야 합니다. 둘이 만날 때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속을 다짐해야 되고 셋이 모여도 결속을 다짐해야지, 여기에서 비판을 다짐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결속을 다짐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자신이 선생님만큼 고생했느냐? 하나님만큼 고생했느냐? 선생님만큼 복잡한 환경에 처해 가지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면서 사명을 완수해 봤느냐? 6천년 동안 진리의 모체를 품고 나오면서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때를 바라보며 묵묵히 지켜 나왔던 그 하나님과 같은 입장이 되어 보았느냐? 입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고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이 남아지나 보라구요. 두고 보라구요. 남아지지 않는다구요. 그런 사람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자기를 통해서 우리가 중심 자리를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시의 재료로서 수습해 가지고 자기가 받을 피해에 대한 방비책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쳐라! 그 채찍이 나라의 충신은 꺾었을지라도 나는 못 꺾는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만큼 고생해 봤느냐 이거예요. 선생님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데 그 이상 수고 못 해 가지고 뭐 이러고저러고하는 사람은 대번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못 가는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의 원수라구요. 제일 원수 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낫지. 따라다니지 않는 것이 낫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해 가지고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런 것을 잘 감별해야되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고개는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는 얘기예요.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시아에 있어서 3개 국만 규합하고 나서는 날에는 세계는 우리의 품으로 규합되어 들어올 것입니다. 그 준비를 지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살림살이를 중심삼고….

요전에 어느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데 선생님 어떻게 했으면 좋아요?' 하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려운 것이 선생님 때문이었느냐, 뜻 때문이었느냐?'고 당장에 물었습니다. '뜻 때문에 그리 되었다면 내가 협조해 주마. 그것은 응당한 책임이다' 라고 했습니다. 뜻 때문에 그랬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자기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선생님은 아버지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식이 어려우면 희생하고라도 도와주어야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이 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희생해야 되느냐? 법을 어겨서 옳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밀어 줘야 되느냐? 그럴 때에는 무자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으로 상당히…. 지나가는 걸인들한테도 말없이 수십만 원까지 누구도 모르게 준 사람인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주는 거라구요. 그렇게도 할 수 있지만 식구의 입장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도와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좋지 않습니다. 절대 도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흘러 나가게 될 때는 참 좋지 못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교회도 선생님이 심각한 입장에서 도와주었는데 불구하고 그 표준에 일치하지 못할 때는 그 교회가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절대 그런 기도를 못 해봤습니다. '아버지 ! 내가 죽게 되었으니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지금까지도 그런 기도를 못 해봤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받아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판국에도 '나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그런 졸장부 노릇은 안 했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서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하고 하늘 앞에 가야 할 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그 한계선까지는 못 넘어간 자리가 아니냐? 그 이상의 자리도 감사하며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시한 자리에서 그게 뭐야? 그러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그리 어렵다고…' 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