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심정의 가르침이 최고의 가르침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7권 PDF전문보기

사랑과 심정의 가르침이 최고의 가르침

그래, 영원히 좋아해야 되겠다 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좋아하겠어요, 무엇을 하면서 좋아하겠어요? 가만이 앉아서 좋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무엇을 하면서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목적이 있다구요. 목적을 이루고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세례 요한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예수님을 증거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 되었어요? 아기를 낳아 가지고 그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가 낳을 때 아이를 사랑하면 다 되는 거예요? 어림도 없다구요.

예수가 태어날 때 사랑하는 아들로 태어났으니 예수가 죽을 때 하나님이 좋아했겠어요? 그런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낸 것은 영원히 아들을 바라보며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영원을 두고 슬퍼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뜻을 못 이룬 거라구요.

남자로 왔던 역사적인 성인들 가운데 누가 성인 중의 성인이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할 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법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법학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것처럼 자기의 전문 분야를 중심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일을 중심삼고 좋아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분야를 넘어서 가지고 전체의 분야에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할 때는 일방적이예요, 사방적이예요? 어디, 여기 할머니들 어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할 때 일방적이예요, 사방적이예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을 할 때 그 사람과 떨어져서해요, 같이 해요? 같이 하지요? 그러면 내가 슬퍼할 때는 떨어집니까, 아니면 그 슬픔을 같이합니까? 같이하지요? 또 내가 기뻐할 때는 떨어집니까, 같이 기뻐합니까?「같이 기뻐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건 아는구먼.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성인은 누구냐? 대답은 간단히 나와 있습니다. 누구일 것이냐? 하나님이 무엇을 기준삼고 좋아하시겠느냐? 사랑을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방향을 중심삼은 성인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이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리워하고. 거기에 따라가겠다고 안간힘을 다하는 내용을 가르쳐야 되고, 그렇게 몸부림친 사실을 남겨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에서 톱(top)입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라구요?「아버지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그 아버지의 뼛골을 이어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지면 자식도 자동적으로 슬퍼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슬퍼할 때 '아버지 슬퍼해요?'라고 물어보고 슬퍼하는 자식이 있어요? 묻더라도 같이 슬퍼하면서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최고를 때려잡은 것입니다. 최고를 거머쥐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욕심 많은 예수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하고 끝냈으면 되었을 텐데, 거기에다 '나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아들이되 독생자다'고 했습니다. 독생자가 뭐예요?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을 나누어 갖겠다는 사람이예요. 독차지하겠다는 사람이예요? 독차지하겠다는 거라구요.

사랑을 나누어 갖는 법이 있어요? 사랑을 두고 '야, 너 그만큼 갖고 나이만큼 갖자'고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형제끼리도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 내 아버지라고 다투는데…. 어제 내가 청평에 갔었는데 거기에 어떤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 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내 아버지야' 하고 그 아버지의 무릎에 앉자 그 오빠는 '네 아버지도 되지만 내 아버지도 된다. 네가 아버지 무릎에 앉으면 나는 아버지 등에 업힌다' 하며 한술 더 뜨는 거예요. 앉는 것도 좋지만 등에 업힌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떤 것이 더 좋으냐고 헤헤 웃으며 자기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볼때, 사랑은 독점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릎에 앉은 동생에게까지도 오빠가 굴복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욕심장이였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은 세상의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의해서 처음으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시시한 아들딸들은 다 필요 없고 진짜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자의 진짜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살림살이나 맡는 아들이 되면 뭐해요? 밥이나 배부를 때까지 실컷 먹고 살에 기름기만 흐르게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밥을 못 먹고 고생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아버지 속에 알뜰하게 숨겨져 있는 뜨거운 사랑을 독점하겠다는 아들, 그런 아들이 제일 무서운 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