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 대신 제물 되신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7권 PDF전문보기

이스라엘 민족 대신 제물 되신 예수

한 개인이 제물을 드리는 목적은 개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개인을 세운 것은 그 개인의 가정을 통해서,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메시아가 올 때 몽땅 묶어서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물을 세운 근본 목적 입니다.

그러한 제물권으로 갈라낸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권을 중심삼고 세운 터전이 유대교권과 이스라엘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권(圈)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이 왔을 때 예수님과 하나되어 바쳐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이 예수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 앞에 몽땅 바쳐질 수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되는 것이요 유대교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4천년 동안 제물 드린 것은 개인이 하나님 앞에 인연을 맺고 소망적인 생명과 소망적인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되었지만, 실체적인 사랑과 실체적인 생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되지 못했습니다. 또 가치적으로 볼 때도, 제물이 바쳐진 것은 개인적으로 분별된 입장에서 승리한 가치입니다. 그것을 거쳐 가지고 가정적 입장에서 제물이 바쳐진 승리의 가치권, 혹은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입장에서 제물이 바쳐진 승리의 가치권을 준비해 놓았지만, 이것은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의 내적인 존재, 유대교의 아벨적인 존재를 통해서 바쳐져야 됩니다. 그 존재가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와 하나되어 가지고 몽땅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예수를 중심삼은 일체의 요인 앞에 상대인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데 있어서는 노력해야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부정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부정하고 유대교가 예수를 부정했기 때문에 제물적 기반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예수가 이 일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제물 자리에 나가는 입장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4천년 동안 수많은 제물을 드려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까지 가려 나와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를 맞을 수 있는 대상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예수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합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유대교는 수천년 동안의 역사과정을 통해서 탕감의 노정을 걸어왔지만, 즉 제물적 노정을 걸어왔지만 예수는 일대에 이스라엘 나라가 4천년 동안 준비해 나와서 실패했던 것을 자신의 한 몸을 통해서 대신 바쳐 드릴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반대를 받아 가지고 제2차 노정을 출발한 것은, 다시 말해서 세례 요한이 실패한 그 권(圈)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 나선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 전체가 봉헌된 제물의 입장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상대적 권을 찾아 가지고 이것을 다시 수습하려고 했지만 수습할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권 전체를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서 바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누가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 자신입니다. 본래는 예수가 제사장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제물로 바치고 하나님은 받으셔야 할 터인데, 결국은 예수가 제물의 자리에 나가게 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제물 드리는 예수의 입장에 내려와 가지고 제물을 바치는 입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제물을 받아야 할 소망의 때가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쳐야할 예수가 제물이 되니 하나님이 제물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느냐? 당장에 받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에 소망하는 하나님의 승리의 자리를 바라보면서 약속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예수를 바친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바친 것은 예수 자신이 제물의 목적을 성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에 성사시킬 수 있는 자리를 남기는 자리에서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