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려면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8권 PDF전문보기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려면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그러한 날들을 보내면서 일년이 지나고 일년 반이 지나간 오늘에 있어서, 이제 6개월이라는 기간을 남겨 놓은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이 애기들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은 아버지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봐야하겠습니다. 또, 자기 아내를 생각하게 될 때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되겠고, 아내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교회에서 바라는 책임을 다했느냐?즉, 하나님이 바라는 데 있어서의 내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바라 보게 될 때, 그 책임은 우리 가정에 한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 긍(亘)한, 이런 책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책임 못 한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자식을 바라보면서 느낀 그 슬픈 마음, 아내를 생각하면서 느껴진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이 나라 이 민족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이 나라와이 민족과 오늘 우리 가정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이 나라를 지킬 사람이 누구냐? 우리가 지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느껴 온 우리 민족의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슬픈 자리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 가지고 분발하고 자체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하늘 앞에 오늘을 지킬 줄 아는 우리 축복가정들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7월 초하루를 맞이하면서, 남아진 기간을 여러분이 과거의 습관적인 생활의 연속으로서 흘려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6개월 간은 보다 힘차게 살고 보다 보람있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6개월 이후에는 아내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 돌아온 아내를 대해, 나는 당신이 없을 때 이런 이런 일을 했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이런 일을 했다고 진지하게 지난 기간을 회상하여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아무것도 아닌 입장에서 살아왔지만 하늘은 우리의 전후좌우에서 우리들과 같이하셨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돌아온 그 시간부터 손에 손을 붙들고 보다 보람있는 내일의 가정의 터전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새출발을 맞아야 할 것이 지금부터 6개월 이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그때에 그것을 가정의 기쁨으로 맞을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기쁨으로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무정한 것입니다. 어젯날보다 못하게 될 때는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되는 거예요.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로 보게 되면, 하나님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로 점점 차원이 높은 분야를 다짐하면서 그 사명을 추구하는 자를 세워 가지고 개척해 나오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걸 볼 때, 미래에는 현재까지의 사명과 싸움보다도 더 큰 사명과 치열한 싸움을 촉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금후에, 1970년대에 하늘이 요구하는 사명 분야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이만한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도 그만한 수고와 그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 남북이 갈라져 있는 현재의 국가적 비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어차피 누가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문제, 어느 누가 하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너나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체를 탓하면서 내일의 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고 세계의 운명을 염려하는 이러한 무리가 있거들랑, 그 무리를 통하여서 새로운 국가 운동이 벌어질 것이고, 새로운 국민사상의 지침이 서게 될 것이고, 새로운 역사의 한 민족 봉기선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여기서부터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것입니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1년에 안 되면 3년에, 3년에 안 되면 10년에, 10년에 안 되면 20년을 거쳐서라도 그 방향을 제시해 가지고 삼천만 민족 전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던, 출발 당시에 맹세했던 그날의 소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움직여 가지고 전체가 출발했다고 하는 그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소망이 싹틀 것이고 우리의 소망의 결실이 보여질 수 있지, 그전에는 소모전입니다. 전체가 움직여 나가기 전까지는 소모전쟁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소모전쟁을 누가 감당해야 하느냐?누구도 감당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희생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을 가졌지만 말없이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목표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오직 이것만을 생활수단으로 삼고, 투쟁만을 생활방편으로 세워 나가는 무리 외에는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은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섭리사에 나타났던 개척자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은 언제나 제물이 된 것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역력히 알게 됩니다. 제물된 사람으로부터 제물된 무리를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제물된 무리로부터 제물된 민족정신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총진군하게 될 때, 제물의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거기서 비로소 빛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거기서 싹이 트고 줄기가 되고 잎이 되고 꽃이 피어 가지고 열매가 맺어질 수 있는 것이지, 제물되는 그런 과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된 결과가 반드시 전체 앞에 받아들여진 결과에서만이 제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