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지우는 자리에서 체휼할 수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8권 PDF전문보기

빚 지우는 자리에서 체휼할 수 있다

여러분들, 여기 간부들 각성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이 밥을 먹고 사는 그 자리가 무서운 자리라구요.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책보를 들고 드나드는 것을 볼 때 무서운 자리라구요. 빚을 지고 있느냐, 빚을 지우고 있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올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빚을 지는 자리는 동정하지 않는다구요. 동정을 안 해주는 것입니다. 빚을 지우는 자리를 동정하는 것입니다.

통일산업이나 무슨 회사나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푼의 돈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단체가 이만하면 차가 필요한데, 아무개 차를 사 주소' 할 때, '오냐, 사 주지, 그렇지' 했습니다. 차 타고 다니는 것이 자랑이예요?차 타고 다니는 것이 뭐냐?차타고 다니는 것이 좋을는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 드는 경비는 어디서 나오느냐?거기에 비례하는 자기의 심적 태도가 문제라고요. 빚지는 자리가 아니냐는 겁니다. 빚을 지는 자리이니까 문제라구요. 빚지는 자리에서는 하늘도 동정하지 않는다구요.

그래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렇다구요. 자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한다구요. 여기 어머니도 잘 알지만 내가 양복이 어떻게 됐다고 뭐 주름이 어떻게 됐다고 이걸 바로잡겠다고 이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충신은 옷 잘 입었다고 충신이 되는 것이 아니요. 잘산다고 충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옷 잘 입었다고 효자가 아닙니다. 차라리 못 입고 못 먹고 하는 데서 역사가 움직일 수 없는 심정의 방어선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요하다구요.

여러분이 요즈음에 활동할 때는 대번에 '본부에서 도와줘야지' 하는데, 이 사상은 거지사상이라구요. 빚지는 사상이라구요. 그래서 선생님 자신은 지금까지 일생 동안 빚지려고 하지 않았다구요. 내가 은덕을 입었으면 갚아야지, 그것을 갚지 않고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이라구요. 신세를 지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요. 여러분도 이런 생활을 철저히 해야 됩니다. 그것은 왜?그 집안의 위신이 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위신이 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의 전통의 위신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위하고 주체를 위하는 마음이 사무치게 될 때는, 그 주체가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없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적인 세계에서 이렇게 해야 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 가든지 환영받는 거라구요. 손해를 입히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배척받고 이익을 끼치는 사람은 환영받는다구요.

그래,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그렇다구요. 그렇게 못된 통일교회인 줄 알고 세상을 망치는 통일교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는 입장에 들어갔습니다. 왜냐?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손해를 입힌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반 문제, 주체와 대상 관계의 정상적인 실현 여하를 어떻게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체휼이라는 것은 안 오는 거예요.

글을 쓰더라도 혼자서 그냥 쓰는 것보다도 '이 글은 누구를 위해서 쓴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님을 위해서 쓴다.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서 쓴다' 할 때에 얼마나 의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미래의 나라의 뒷받침을 위해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냐?내가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더라도 그날 아침을 내가 깨서 맞기 위한 소원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며, 오늘 이 시간 이 저녁에 밤을 새움으로 말미암아 소원성취할 수 있는 한 순간, 내가 조건이라도 세울 수 있는 한날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때, 밤을 새우는 날이 피곤한 날이 아니라 소망을 촉구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시간으로서 맞아들일 수 있다고요.

그렇게 될 때 하나님도 사람과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이 진짜 그렇다면 말이요. 하나님을 위해 공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피곤해서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이 그걸 모른다고 하겠어요?그렇기 때문에 효자는 부모를 울리는 것이요. 충신은 군왕을 울리는 것입니다. 열녀는 남편을 울리는 것입니다. 힘으로 힘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을 바라볼 때에, 자동적으로 완전히 포위되어 가지고 자기의 모든 사연을 직고할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가진 것이 효의 길이요. 충의 길이 아니었더냐?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효자를 보고는 숨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천 가지를 주고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주고 자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돼요. 그 마음 앞에는 무엇이든지 안줄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다 주고 나서도 자랑 못 하고 더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됩니다.

그런 부모를 주체로 모시게 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활면에서 아버님을, 하늘을 눈물짓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일대에 있어서 하늘이 나와 더불어 통곡한 사실이 있다 할 때,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효자를 앞에 놓고 효자 때문에 눈물 흘리는 부모는 불행한 부모가 아니예요. 행복한 부모입니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소망의 눈물이요. 희열의 눈물이요. 감사의 눈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