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씨와 옥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완전한 씨와 옥토

자, 그렇게 볼 때에,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예수 믿는 사람' 하면 높이 봤습니다. 혹은 종교를 믿는 사람을 높이 봤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는 점점 그것이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요사이 과학이 발달된 이때에 있어서, 모든 것이 분과 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원칙을 따라 가지고 하나의 분과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규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초월해 가지고는 인간의 가치 추구를 인정할 수 없다. 물질적 상대세계를 맞은 이때에 있어서 종교가 뭐 필요하냐?' 이런 때에 들어왔다구요. '종교가 필요없다. 종교가 바라는 이상이 뭐 필요하냐? 종교가 바라는 인격, 종교가 바라는 가정, 종교가 바라는 국가관 세계관이 필요없다' 이렇게 돼 있다구요.

자, 이러한 세계 앞에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섭리를 추진시켜 나오신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예요? 절대적인 종교를 위주할 것이 아니예요? 절대적인 하나님을 위주한 사상을 위주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오늘날 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물질문명이 극단에 처해 있는 현시대에 있어서 여기에 남아질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있어서 세계가 떨어지는 낙엽이 되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여기에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세상에 반대되는 것, 하나님이 제시하는 절대적인 종교, 절대적인 국가관, 절대적인 사상관을 갖고 나오는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될 것이 아니예요? 이래서 또 다른 새로운 십자가의 형성이 이 땅 위에 벌어질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구요. 그것은 그래야 돼요.

그러면 끝날은 어느때가 끝날이냐? 여기가 출발이라면 여기가 끝날입니다. 끝날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차원을 거쳐 나가게 되면 새로운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심어진 밭에 따라서 씨의 결실은 달라지는 것이 아니예요? 돌짝밭에 뿌리느냐, 옥토에 뿌리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한테 뿌리느냐, 선한 사람한테 뿌리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수확된 결실을 가지고 돌짝 밭과 가시덩굴 밭에 뿌리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옥토에 뿌리기를 원할 것이 아니예요? 옥토가 무엇이냐? 옥토로 준비한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옥토로 설정해 가지고 준비한 것이 종교가 아니예요?

그러면 옥토라고 주장하는 종교가 진짜 옥토가 되어 있느냐? 옥토라는 것은 어떠해야 되느냐? 흙이라는 것은 어떠해야 되느냐? 씨를 위해서만 있어야 됩니다. 씨가 필요한 요소를 흡수하게 될 때에, 백의 요소를 흡수할 수 있다면 백의 요소를 갖추어 그 상대적 진액을 씨 전체에 보급할 수 있어야만 완전한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럴 수 있는 종교가 있느냐?

그 완전한 씨와 같은 것이 무엇이냐? 기독교에서는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온다고 했습니다. 메시아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그가 오면 옥토를 향해서 올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옥토가 될 수 있는 교회가 있느냐? 옥토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씨를 위해서 있습니다. 씨를 위해 있는데 씨가 백만큼의 필요한 요소의 흡수력을 가졌으면 천, 만의 요소를 갖추어 가질수록 그것은 옥토인 것입니다.

이런 옥토가 될 수 있는 종교가 있느냐? 나라가 있느냐? 기독교가 있느냐? 전부 다 돌짝밭이요, 전부 다 가시덩굴밭입니다. 옥토라는 것은 자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이런 때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갈라졌으면 끝날에 심판을 받든가, 칭찬을 받든가 또다시 만날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불효해 가지고 나갔다면 다시 만나 가지고 한번 담판을 하고서야 인연을 끊든가 안 끊든가, 갈라지든가, 정을 끊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지요? 불효했다고 해서, 뛰쳐 나갔다고 해서 부모가 '에이, 이놈의 자식! 나갔으니까 나하고 관계없어!' 하고 관계를 끊어 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나갔으면 다시 돌아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돌아올 때에는 옛날에 그랬던 것을 다시 한 번 회상해 가지고 자기 스스로 자책하고 회개하는 자리에서 본연의 효의 모습을 갖고 나타나기를 바라고, 또 그런 자리에서 자식을 맞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은 그럴 수 있는 요인을 지녀야 할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돌아와 가지고도 회개하지 못하고 '뭐야!' 할 때에는 잘라 버리는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