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심정을 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심정을 안다

그러면 통일교회주의는 무슨 주의냐? 하나님주의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하나님주의. 그 관을 통한 개인은 어디에 내놓아도 심정이 통합니다. 관념적인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생활적인 하나님을 모시자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논한다는 거예요.

오늘날,'신학(神學)'하면, 신학은 신을 배우는 것입니다. 배워 가지고 아는 것으로는 심정을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알아 가지고는 심정을 모른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저 사람이구먼. 눈은 어떻게 생기고, 코는 어떻게 생기고, 뭐가 어떻게 생기고, 내가 보니까 저렇게 생겼구나' 이렇게 봐 가지고 아는 것으로는 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과 살아 봐야 합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살아 보면 그 가외의 것은 다 드러나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살아 봐야 돼요. 사는 데에는 맹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잘살아야 돼요.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을 걸고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살아야 돼요. 사랑을 통해 체휼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내가 슬픔을 느끼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 자기도 모르게 기뻐지는 거라구요. 효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자냐? 천만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그 효자의 곁에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의 편재성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지식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라는 것, 개성진리체라는 것은 그것으로 원인 동기가 끝나가지고 그런 형태, 즉 또다시 제 2대상을 상대세계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과 극을 넘어서 편재를 타당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사랑을 통하는 그 길에 있어서 부모는 무소부재입니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다구요. 그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사랑만이 그 아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전능한 권한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살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교육해 가지고 뭘하시고 싶었던 것이냐? 교육해 가지고 머리만 크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알려 줘 가지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행하라는 거예요. 같이 살라는 거예요. 살면서 뭘하자는 것이냐? 울자는 것이냐. 좋아하자는 것이냐? 좋아하자는 거예요. 좋아하려니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우리는 이러한 자리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는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편재성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의 콧김과 같이 느끼라는 거예요. 흐르는 물이 있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거예요. 태양을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서 배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새워 놓은 것이 자연이 아니예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성인에 가까운 거예요. 알겠어요? 미친 사람이 아니라구요.

행복이 어디에 있더냐? 지식에 있는 것이라면 그 지식을 찾아가라구요. 행복이 어디에 있더냐?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무한한 편재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무한한 존속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생명력이 거기에서 설정되는 것입니다. 큰 희망을 가지고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보다 큰 차원에 있어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따라가서 보다 전진적인 자극이 추구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극을 어디서 받느냐? 지식에서?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지식은 그것을 '그렇다'고 결론을 내면 다 끝나는 거라구요. 오직 사랑에서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