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종교에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이유

우리 인간에게 한이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서 독신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자로 태어나서 독신생활하는 것이 한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인간이 하나님을 빼놓고 자기들 끼리끼리 아무리 부부의 행복을 노래하고 살았다 하더라도, 본연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볼 때는 불합격자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부부가 손을 잡고 합해 가지고 가야 되겠지만, 만약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합해 가지고도 완성시킬 수 있는 길이 없다 할 때는 남편이 먼저 가든지, 아내가 먼저 가든지 서로 먼저 달려가라고 권고해야 할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아, 당신하고 나하고 둘이 같이 갑시다. 죽더라도 같이 가다가 죽읍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망조입니다, 망조. 더 이상 합심할 수 없기 때문에 피난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피난길을 한 번 가보라구요. 바쁘다구요.

선생님은 6,25때 피난길을 맨 나중에 떠났는데, 인민군들은 30리 밖에서 뒤쫓아 오고…. 한 발자국이 얼마나 다급한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 둘이, 부처끼리 하나되어 가지고 혼자 가는 것과 같이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별문제이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에서 너나 나나 둘 중의한 사람이 빨리 가 가지고 찾아야 한다면 '어서 내 앞에 가소. 나를 버리고 가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또 다른 사랑의 길이, 둘이 찾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가 있다면 모르지만…. 경주장에서 한 선수를 붙들고 '우리 여기서 죽더라도 같이 죽자'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구요. '나를 버리고 어서 그것을 찾아가소. 남자를 버리고 찾아가소. 여자를 버리고 찾아가소' 이런 말을 해야 되는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진, 그런 사랑의 이상을 가진 하늘이 역사시대에 종교를 낼 때. 어찌하여 독신생활을 강조했느냐? 둘이 붙들고 이것을 주파해 낼 수 있다면 둘이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둘 중의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 되겠다'는 입장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인류 역사의 배후와 신앙의 터전 가운데 있기 때문에, 둘중에 한 사람이라도 달려가서 그 길에 도달하기를 바라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남자 여자 가운데서 누가 먼저 그 자리에 도달하기를 바라겠느냐? 남자가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인 남자가 먼저 그 자리에 도달하기를 바랄 것 아니예요? 그러므로 그 주체가 먼저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상인 여자를 가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모든 것을 품고 그 자리에 오라고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도의 길에 있어서는 독신생활을 강조하면서 그 길로 내몰았던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신생활을 하는 자리에 있어서, 즉 횡적인 상대를 저버리고 종적인 이상세계를 찾아 나가는 그 자리에 있어서, 꿈에라도 자기 상대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끝까지 일생을 바쳐 주파해 낸 신앙자가 있었느냐?

그것을 바라신 하나님의 원칙적인 심정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바라신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길을 가라고 명령한 것은 아무리 고독한 신앙길을 간다 하더라도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상관하고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횡적인 면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정서적인 문제에 얽매어 가지고 허덕이는 때가 얼마나 많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길이 얼마나 비참했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