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벽에 부딪친 인간의 소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절망의 벽에 부딪친 인간의 소원

그러면 금후에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의 세계, 자유를 중심삼은 평화의 세계가 올 것이냐,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렇다면 금후에 그러한 소원의 세계가 과연 올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과거와 현재가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있어서도 그러한 세계를 바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 인류가, 혹은 세계 정세가 이런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 세계에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있지만 이 두 세계가 과연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 온 인류가 마음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누가, 어디에서 이것을 시작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사람만 가지고는 불가능하지 않느냐, 사람만 가지고는 거기에 도달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결론을 아니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동하는 현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신앙자들은 신앙자의 본질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혹은 정치면 정치인들은 자기의 인간적 가치를 중심삼고 본질을 분석 비판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경제인이나 문화인, 각계 각층에 있어서도 이 세계적인 정세를 앞에 놓고 재차 비판해 가지고 그 본질적인 요인이 추구하는 통일의 방안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인간들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다한 것이 아니냐?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최대의 한계점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냐? 이러한 결론을 아니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인간 자체로 돌아와서 인간의 상을 바라볼 때, 여기에 소원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할 때 거기에는 소원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절망의 와중에서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신념이라도, 자신이라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두고 보거나 처해 있는 환경을 두고 보더라도, 내일의 소망을 다짐지어줄 수 있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러한 우리 인간 자체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절망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아니냐. 그렇다고 해서 돌아서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도 찾았느냐? 그것 또한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러한 자리에 서 있다 하게 될 때, 과연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진정 내일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행복한 환경이, 혹은 불행한 환경이 미래의 소원을 새로이 개척 시키고 새로이 계승시킬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겠느냐 할 때, 거기에 자신(自信)을 가질 수 없는 자신(自身)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요, 그러한 우리요, 그러한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인류는 그야말로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을 보장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요, 내일을 계승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터전도 없는 자리에 선 걸 볼 때, 인류는 절망에 부딪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이 사회적인 여러 여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일 사람만이라면 이것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 위에 또 다른 무엇이 있다 할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하고 우리는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혹은 좋은 친구다 나쁜 친구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어머니 아버지를 두고 그 자식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좋은 어머니 아버지다 혹은 나쁜 어머니 아버지다, 이렇게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의미의 좋은 친구가 있었느냐, 진정한 의미의 좋은 부모가 있었느냐, 진정한 의미의 좋은 형제가 있었느냐? 그 좋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이것 역시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유스러운 환경의 여건을 허락한다고 해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바라는 행복의 터전을 이어줄 수 있는 부모라고 볼 수 있느냐? 참다운 좋은 형제요, 참다운 좋은 친구요, 참다운 좋은 스승으로 볼 수 있겠느냐?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 참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이 바라는 욕망은 참만이 있으면 좋겠는데 참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자리에 서고 싶지만 참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참된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에 서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참된 자리는 어떠한 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않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참된 자리에 서지 못했다면 악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그 악의 궁극적인 한계점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