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이 와야 하는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1권 PDF전문보기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이 와야 하는 이유

그러면 그 남아질 인물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는 개인을 위해서,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사는 주의라든가 사상이라든가 하는 생활 방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주의 사상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면 되느냐? 인간을 위주한 전체주의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인간을 초월해서 신을 위주한 전체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전체주의가 되면 그것은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자로 태어났으면 상대가 될 수 있는 여성을 맞는 것이 최대의 소망일 것입니다. 여성을 맞아 가지고 행복을,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의 소원성취가 다 이뤄지게 될 때에, 그 소원은 횡적 소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상대적 인연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적인 소원이 거기서 출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난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생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자녀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만이 사랑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서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바라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중심삼고 소원하던 것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도달 못 했다면 그것을 바라는 사람, 즉 세계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그래도 제 2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세계가 망하는 시대에 남겨 놓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상 것과 하나님 것은 반대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을 반대되는 길로 말했습니다. 세상과 하늘이 서로가 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상충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충될 수 있는 내용, 절대적인 뜻을 품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장에서 상충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된 자리에 서는 사람이란 현재의 생활과 현재의 인생관을 부정하는 자리에 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독실한 종교인들입니다. 특정한 타입의 종교인들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래도 끝날에 남을 수 있는 소망의 무리는 인간만을 위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무리입니다. 그런 무리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느낄 거라구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여러분이 바라는 이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북 사람도 새로운 통일을 바라고 있고 이남 사람도 통일을 바라고 있는 거라구요.

이 세계를 볼 때에 이 세계는 좌우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주세계에 사는 사람이 이 세계가 자기의 이상 동산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민주세계가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공산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 실험해 본 결과에서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재가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다 차고 지나가게 되면 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서 매매되고, 매매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왕래되어야 할 것인데 불구하고, 더 낮은 차원의 것으로 왕래되는 결론을 보게 되었다면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문명이 인간이 가치시하는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그러한 뒷받침이 못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을 통한 현재 세계에 있어서 고차원적인 이상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보다도 낮은 것을 중심삼고는 이상을 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높은 차원의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겠기 때문에, 끝날에는 종교의 세계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삼은 승리의 세계가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위주로 해 나왔기 때문에, 그런 목적의 귀결점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끝날이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