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순응만이 참과 접할 수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6권 PDF전문보기

순종과 순응만이 참과 접할 수 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예수님은 어린양이다' 하는 말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구요.또, 어떤 때는 '목자'라는 말도 우리는 배우고 있다구요. 순종할 줄 아는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순종시킬 수 있는 법을 알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내가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대접하러 왔다'는 말도 한 것이라구요. 여러분도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지도자가 있으면 그 지도자가 책임을 다하고 당당한 중심적인 자격자일 때 거기에서는 불평없이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는 전통을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평지를 여기에서 새로이 접하는 거예요.

거짓 목자는 양을 몰고 가더라도, 몰고가는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양의 생명을 노리고 그 자체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거라구요. 선한 목자는 바로 그 반대입니다.어디로 끌고 가든지 양에게 좋고 양을 위해서 끌고 간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요, 또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의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양떼 가운데서 따라가는 도중에 '야야, 우리 가지말자' 이러는 양이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양이 아니라 염소가 되고 산양이 될 수밖에 없다구요.

순응과 불평을 중심삼고 볼 때에 참과 접할 수 있는 것은 불평이 아니라 순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만과 희생이 맞부딪치게 될 때, 여기에 교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 주체로 남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강제와 순종이 맞부딪치게 될 때 어느 것이 주체로 남아지느냐 하면, 강제는 물러가고 순종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볼 때 성경이 가르쳐 준희생이라든가 온유겸손이라든가 순종이라든가 복종이라는 말은 쉬이하나 만드는, 새로이 모이는 무리로 하여금 새로운 혁명을 제시하기 위한 중요한 제언이요, 중요한 신조요, 중요한 강령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내세울 수 있다구요.

그러면 그 양은 '주인이 가자는 대로 가 보자. 가자는 대로 가 보자. 어디 가 보자. 가 봐 가지고 나쁘면 물러서자'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다 가 가지고도 내 주장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가 가지고도 주인의 주장을 바라는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양 떼가 아니겠느냐. 만약 가는 과정에서 목자가 먹을 것이 없으면 양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질것입니다. '따라온 것도 원통한데, 나를 잡아먹어?’ 이렇게 되면 일은 다 끝나는 거라구요.그렇다고 잡는 것을 보는 옆에 있는 양들이 데모를 하게 되면, 다 그만이라구요. 백 마리 양 중에서 아흔 여덟 마리 양을 다 잡아먹고 수놈 암놈 한 쌍을 남겨 가더라도 주인에게 확실한 이상의 목적지가 있거들랑, 아흔 여덟 마리 양을 다 죽여 잡아먹고라도 두 마리양을 품고 그 이상의 곳을 가려고 하는 주인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가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 길이라면 그래도 가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만일에 여기에 있다가는 그 두 마리 새끼 종자도 없어지고 주인도 망한다 하게 될 때는 불가불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계 인류를 다 죽이더라도 양 두 마리 품고라도 이상세계에 들어가야 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게까지 우리는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