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변의 사랑에는 어떠한 것도 문제될 수 없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6권 PDF전문보기

영원불변의 사랑에는 어떠한 것도 문제될 수 없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 하나님은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소모시키고 희생시키며 왔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서 찾았다 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느냐 이거예요. 고생하고 찾은 것과 고생을 안 하고 찾은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있겠어요? 부모는 잃어버렸던 자녀를 수십 년 동안 수고해서 찾아다니다가 비로소 만나서 기뻐하는데,그 자녀는 '이거 어떤 남자가 와서 나를 이렇게 좋아해! 나 싫어!’그래야 되겠느냐구요. '당신하고 나하고 사람도 틀리지만, 그 닮은 게 뭐가 있어요? 머리카락도 보면 나는 새까만데 당신은 샛노랗고…. 무엇이 관계 있어요? 이럴 수 있다구요.

여러분들, 하나님의 머리카락이 샛노란지, 새까만지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의 머리카락이 새까매요, 샛노래요? 어때요? 생각해 봤어요?(웃음) 그거 생각해 봐야 된다구요. 그리고 하나님의 살이 새까매요, 하얘요? 만일 새까맣다면 어떻게 할래요?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할래요?「예」 말을 들으니 '예스'하지…. 하나님은 이상적인 분이기 때문에 새까말 수도 있고, 새파랄 수도 있고, 노랄 수도 있고, 하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이 새까맣다면 '아, 저건 흑인의 하나님이다'고 그러겠어요? 노랗게 황인종같이 생겼을때는 '황인종의 하나님이지 내 하나님은 아니다'고 그러겠나요?「아닙니다」 그러니까 색깔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랑에는 하나의 사랑, 영원한 불변의 사랑에는 그 사랑만이 제일이지, 색깔이나 모양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도리어 새까만 사람이 하얀백인을 보고 '야 넌 내 아들이다' 할 때에 '아, 그래요. 내 아버지여!' 하고 엉엉 울면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어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나와 같은 자리에 같이 살지 않고 모든 슬픔을 갖고 나라를 다니면서 고생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동기가 거기서 결정되는 거예요.

자, 육천년 동안 그렇게 수고하시며 찾아온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들을 찾아갈때 ‘너는 검둥이고 너는 흰둥이다' 이렇게 봐 가면서 찾아가겠어요?(웃으심) 색깔이 문제예요?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만이 문제지 그 외의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구요. 아들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망치고 세계를 망쳐 가면서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찾아와서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하는 생각해 봤어요? 진짜로 느껴봤어요? 그렇게 찾아온 아버지를 내가 찾았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얼마나 기뻐하겠느냐구요. 아버지도 그런 것을 알고, 나도 그렇게 찾으려고 그러다가 만났다면 그 얼마나 기뻐할 것 같아요? 입이 찢어지리만큼 웃어도, 혀가 뒤집히고 눈이 뒤집혀도 좋다는 거예요. 춤을 춰도 무슨 춤을 추는지, 그건 형용도 못할 거라구요. 밥을 몇 시간, 몇 일, 몇 달을 안 먹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그렇게 수고한 아버지를 만났다면 그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무슨좋은 것을 한번 해 드리고, 그 아버지를 기쁘게해 드리기 위해서 내가 수고한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해보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리하여 아버지가 좋아할수록, 고생한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는, '야야 뭐 고생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아버지가 고생한 것을 다 잊어버릴수 있는 일을 해서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 나만이 아들이 아니고 다른 형제들도 많이 있는데 당신이 찾기 위해 또 그렇게 고생해서는 안 되겠으니, 내가 대신 할 테니 아버지는 이제 그만두시고 저기로 가세요' 하며 내가 혼자서 전부 다 찾아 주겠으니 아버지는 오지 말라고 한다 해서 불효이겠어요? 아버지 이상 할 수 있으면 '오냐…' 아버지는 좋아하는 거라구요.

그런 아들이라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그러나요? 그런 고생이라면 누구든지 고생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아들이 있다면 누구를 위해서 고생하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아버지를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하겠다는 그것밖에 없는 거라구요. 그 자리가 효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타락했던 인간으로서, 배반했던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다시 만난 그 감사의 은덕을 만민 앞에 전하려는 자리이지,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자기를 생각지 않고 희생하는 아들일수록 그 아버지는 더 고맙게 생각하게 되고, 형제들은 자기를 생각지 않고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 대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 더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인연되고 더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