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표준으로 오늘의 생활을 조정해야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게 될 때, 대다수가 자기를 중심삼고 결정하기 일쑤인 것입니다. '아! 그거 좋다', '아! 그거 나쁘다' 할 때에 그 기준이 누구의 기준이냐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기준이다 이거예요. 내가 과거의 생활습관을 통해 가지고 현재 입장에 처해 있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라는 거예요.
잘 살아온 사람은 잘 살던 습관의 기준을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를 평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못살던 사람은 못살던 그 자리에서 좋다, 나쁘다를 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뜻을 향하여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이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뜻도 하나요, 그 뜻의 길을 향하여 가는 길도 두 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이렇게 왔다갔다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밖에 없습니다. 직선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까지 지내 나온 좋고 나쁘다는 평이라는 것은 전체를 대표한 기준에 서서 평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의 생활습관을 중심삼고 평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젯날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어떻게 찾아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반드시 악의 세계에서 돌아와야 됩니다. 악한 세상은 이렇게 흘러 나가는데, 이 흘러 나가는 흐름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는 하나님의 본래의 뜻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흘러가는 현실의 입장을 부정해 가지고 여기서 탈출해야 됩니다.
이 환경을 극복해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면의 돌파구를 이루어서 매일 같이 방향을 달리하는 길을 찾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로 갈수 없는 것이 신앙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신앙길을 가기 위해서는 내 힘이 부족하고 내 자신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어떠한 습관적 기준, 생활적 기준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변하기 쉬우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오늘의 생활을 조정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과거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과거를 현재의 뜻 생활과 결부시킬 수 있느냐 할 때 결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별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과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탄세계의 과거인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나갔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싸우고, 분별하는 과정에서 남겼던 과거지,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과거가 아니었던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사람은 반드시 과거를 이어받아야 하는데, 그 과거를 어디서 찾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과거는 어디에 표준할 것이냐? 과거가 올바라야 할 텐데, 올바르지 않으면 현재에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과거를 무엇에 기점을 두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도 이것이 문제점이 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도주면 도주, 교주면 교주, 즉 종교를 세운 창시자의 뜻을 중심삼고 그것을 이어받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던 그 종교의 기준을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거를 이어받아 가지고 그 과거가 보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무대를 개척해 나가는 데에서 새로운 종교의 방향을 가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과거를 이어받지 못하는 데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어떤 종교의 뜻도 일치될 수 있는 현실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거와 현재가 하나된 자리에 있는 나로부터 비로소 새로운 미래에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지, 과거와 현재가 일치되지 않은 자리에 서는 그런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