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람이 원하는 것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3권 PDF전문보기

슬픈 사람이 원하는 것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여러분, 가정이 있어 가지고 슬픈 가정이 되어서는 뭘합니까? 나라가 있어 가지고 슬픈 국민이 되어서는 뭘해요? 세계가 있어도 슬픈 세계가 되어 있으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겁니다. 그렇지만 이 슬픔 가운데 자신을 투입해 가지고 행복을 찾았다면, 그는 좌우 두 세계를 지배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말한 거와 같이 미국 국민이 위대한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비참한 데를 찾아가야 되고, 비참한 국민은 모두가 미국 국민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니 전체의 비참함을 책임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입장에 선다면, 그 자리가 결국은 중심이 되는 자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너는 어디로 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만일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지금 이 땅을 대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 것이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대해 충고하기 위한 하나님이겠느냐, 이 비참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이겠느냐? 이 슬픈 세계를 누구보다도 염려하는 하나님이 아니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은 누구보다도 고통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은 고통을 받으려 하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이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슬픔을 책임지고, 그 누구보다도 슬픔을 당하면서 그들을 위로해 주고, 그들을 개척하려고 하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딱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예요.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훑어볼 때, 선지자나 예언자나 시대의 선각자들은 이 땅의 슬픈 사람들의 친구가 됐고, 슬픈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고 슬픈 무리를 위하여 희생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림없이 슬픈 하나님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발견 하고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인들은 다 그런 길을 갔더라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이 같이하기 때문에, 세상의 역사과정에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는 길은 기필코 선을 추구하는 역사시대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건 이론적이라구요. 선생님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 했을 것 같지 않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을 수습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 슬픈 사람을 대해 가지고 책임을 진다면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그 슬픈 사람이 제일 원하는 것을 다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이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슬픔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을 갖다만 주면 슬퍼도 좋다 할 수 있게 된다 이겁니다. 간단하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면 그게 뭐냐? 결국은 부모가 있다면 부모 중의 참된 부모요, 형제가 있다면 참된 형제요, 남편이 있다면 참된 남편입니다. 참이라는 말이 가정으로부터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참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 이렇게 된 겁니다.

대개 슬픔의 종류를 보면 말예요, 간단하다구요. 부모가 나빠요, 부모가. 부모 때문에…. 그 다음에 부부 관계, 그리고 가정 관계라구요, 가정 관계. 그 다음에 나라가 있으면 나라 관계, 세계가 있으면 세계의 슬픈 관계, 하늘땅이 있다면 하늘땅의 슬픈 관계, 그거 얼마 안 된다구요. 그런 한 개인에게 참된 하늘땅을 갖다 주고, 참된 나라를 갖다 주고, 참된 가정을 갖다 주고, 참된 아내를 갖다 주고, 참된 아들딸을 갖다 주고, 참된 개인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겁니다. 만일에 그러한 것들을 갖다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슬픔이 어떻게 되겠어요?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뭐가 슬프겠어요? 그걸 그렇게 가질 수 있다면 슬퍼하겠어요?「아니요」 그 사람이 고통 가운데 살더라도, 그 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를 점령할 수 없을 것 아니냐. 모가지를 잘라도…. 그것은 왜 그러냐?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진정 눈물 흘릴 수 있는 아내가 있다면 그 남편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또 그러한 아버지가 되었다면 얼마나 행복하느냐. 그러한 주인이 되었다면 말이예요.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애국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이거예요. 죽는 자리에 나가 죽더라도 남을 위해, 참된 사랑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자리는 결코 슬픈 자리가 아닙니다. 불행한 자리가 아니예요. 죽더라도 말입니다.

여러분, 참된 부모가 흘린 눈물을 봤고, 참된 부부가 흘린 눈물을 봤고, 참된 자식들이 흘린 눈물을 봤어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서 죽고 싶은 생각이 있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죽는 그 자리는 불행한 자리가 아닙니다. 역사를 전부 다 훑어보면 슬픔을 점령할 수 있는 길은이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게 통일교회가 나오기 위한 준비라구요.

오늘의 인류가 제일 원하는 것이 이것이어늘, 이것을 갖다 줄 수 있는 길을 개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길을 개척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친구 중의 친구요,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거기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하나님까지 갖다 주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게 불행한 거예요?「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결론지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진정한 참된 부부와 참된 자녀가 참된 가정을 이루어 참된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되었더라면 오늘의 슬픔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