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섭리는 아담 하나 찾기 위한 놀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7권 PDF전문보기

구원섭리는 아담 하나 찾기 위한 놀음

그러면 그러한 마음을 억제해 가지고 그런 마음을 다시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재창조역사나 구원섭리의 길이 없을 것이 아니냐, 그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 가지고 구원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섭리의 손길을 펴기 위해서는 창조하던 소원, 소망 이상의 마음을 하나님 자신으로서 결의하는 내적인 과정을 다짐짓지 않고는 인간 구원이 어려울 것이 아니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녀에 대한 생활을 통해 가지고도 잘 느낄 수 있는 사실이 아니냐. 구원섭리의 뜻이 나타날, 그 뜻을 세울 수 있는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이 생각 없이 구원섭리의 뜻을 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곡절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곡절의 환경을 극복하고, 그것을 소화시키고, 새로운 희망을 인간 앞에 두지 않으면 구원섭리의 출발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일대 하나님 자체의 내적인 면에서 변혁의 과정을 거쳤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복귀해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복귀를 위주로 해서 가정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까지 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많은 외형적인 종교를 세워 나왔지만 그것은 뭐냐? 장래에 이상적인 아담 하나를 그 모든, 벌려 놓은 그 가운데서 하나하나의 요소를 전부 다 집약해 가지고 아담 하나를 만드는 놀음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기독교가 있으면 기독교 자체, 혹은 유교라든가 역사적인 이름난 모든 종교가 있으면 그 종교도 전부 다 규합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 하나의 본래에 하늘이 이상하였던 타락하지 않은 한 사람의 가치를 거기서 뽑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와 하나님이 단 하나의 타락하지 않은 그 이상적인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된 아담 해와와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의 가치와 비교해 보게 되면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느냐? 타락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본연의 아담의 모습이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종교라는 것은 아담을 재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아담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메시아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지금까지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오면서, 수난 길에 부딪히면서 극복해 나와 가지고, 개인에서부터 환경적인 범위를 거쳐 국가 세계까지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극복하는 것도 단하나 이상하였던 재창조의 완결을 표방한 완성된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한 사람 복귀하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 자신이 책임을 지고 나오는 역사적 배후를 다시 우리들이 생각해 보게 될 때 얼마나 곡절이 많았겠느냐. 거기에는 개인이 비참하게 쓰러져 가는 것을 봤을 것이고, 혹은 가정이 그런 것을 봤을 것이고, 혹은 어떤 민족이 그런 것을 봤을 것이고, 국가도 봤을 것이 아니냐. 지루하다면 지루한 기간이요, 그것이 참 비참하다면 비참한 기간이요. 억울하다면 억울한….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이런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지루한 기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미래의 한때를 바라 나오는 하나님의 내적인 그 생활에 있어서의 투쟁이라 할까,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장면도 많이 가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 자신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로서 절대자로서의 모든 휘하의 전부를 장악하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분이 그런 구원섭리의 고충을 받고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자기 위신과 자체 능력을 생각해 가지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나는 이러한 분이다'라고 주장했다면 역사노정에서 인간 하나 찾는 이러한 길에 있어서 이 곡절을 극복할 수 있었겠느냐?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 유지할 수 없었다고 본다구요.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당당한 자리에 세우려하고, 또 세워질 수 있는 자체임을 주장하고 그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역사노정에 무가치한 타락한 인간을 찾기 위한 그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참아 나올 수 있었겠느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