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신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7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이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신 이유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이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안 되는 이유를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보라구요.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서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고 자기의 전체를 희생적인 입장에서 은공을 입힌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은혜를 갚는 데 있어서 백 퍼센트 은혜를 입은 중에서 한 오십 퍼센트는 떼어서 포켓트에 집어넣고, 나머지 오십 퍼센트만 갚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본심이예요, 아니면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본심이예요? 어느 거예요? 아무리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지만, 우리의 본심을 타진해 보게 될 때, 본심은 틀림없이 백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한다는 결론은 그 누구나 다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 가능하고,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100퍼센트의 은덕을 입혔다고 합시다. B라는 사람은 그 은덕을 갚게 될 때 100퍼센트보다도 덜 갚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 갚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10퍼센트 갚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A는 B가 110퍼센트 갚은 그 진의를 생각하게 될 때에, 또다시 A는 거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하여 더 주고 싶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이것은 점점 불어 나가게 쉽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의 운동하는 물체가 한 바퀴를 돌면 힘의 감소가 되는데, 이것은 주고받을수록 감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다는,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만이 영원합니다. 그 외에는 영원의 개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존재하시기 때문에, 위하여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그 기준이 이뤄졌다면 하나님의 뜻은 완결됩니다. 또한 영원히 주고받으면 그것은 자꾸만 커지게 되니까 여기에서 번창이 벌어지고 발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지금보다 나아져야 행복한 게 아니예요?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감퇴되고 축소되는데 이상적이예요? 아니라구요. 이와 같은 진리를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하여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요, 위하여 존재하는 데에 발전과 번창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천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무엇이냐? 여러분 보라구요.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형제 중에 막내가 그 누구보다도 여덟 식구를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산다면, 그 동생은 어떻게 되느냐?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안으로 품어 들입니다. 점점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의 형님도 그 막내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아들이요, 작은 동생이지만 그는 어떠한 존재가 되느냐 하면 그 가문의 중심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나님께서 위하여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중심이 돼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대상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도 위하여 존재하는 중심적인 자리에 나아가야만 절대적인 중심 앞에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리에 서는 사람은 틀림없이 중심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군(君)의 중심존재인 군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냐? 군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군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도를 대표한 도지사는 어떠한 사람이냐?(박수) 감사합니다. 그 도지사는 누구보다도 도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선거해야 됩니다. 또한 그 나라의 대통령은 어떠한 사람이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누구보다도 그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위정자가 있다면 그는 역사적인 주권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 살라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왜 길지않은 일생 동안에 위해서 살라고 그러우. 사람이 얼마나 살기에, 짧디짧은 청춘인데 왜 위해서 살라고 그러우? 하지만 이 원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러한 원칙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젊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위하여 사는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 되시는 여러분들이 자식을 교육시킬 때, '야, 야. 너 사람들 앞에 좋은 일 하라'고 말했는데 '좋은 일 해서 뭘해' 이렇게 대꾸하면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좋은 일 하면 그냥 좋은 거야'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건 안 통합니다. 안 통한다구요. 원인 분석을 하여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된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선하라고 하면 '거 적선이 뭐야? 선이 뭐야?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이야? 아니라구요.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적선을 해야 되고,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선을 행해야 된다는 거예요. 선이 뭐냐? 남에게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내 자체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자는 틀림없이 중심존재가 됩니다. 만일 역사적인 어떤 존재가 반항을 하다가 추방을 당하더라도, 혹은 탄압을 받아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더라도 틀림없이 그는 중심존재로 등장할 것입니다. 땅 위에서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그를 중심존재로 환영하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라도, 영계에 들어 가서라도 그 사람 앞에 천번 만번 굴복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칙을 알게 될 때는 세상만사의 어떠한 역경도 순리적인 인생길로 닦아 갈 수 있는 강한 힘이 여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 다 훌륭해지고 싶지요? '나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고 싶다. 세계의 중심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다 될수 있다구요. 어떻게 하면 되느냐?'나는 역사 이래의 어떠한 그 누구보다도 인류를 위해서 있다. 인류를 위해 살다가 인류를 위해 죽을 것이다. 어떠한 역경도 감수하고, 인류를 위해서 죽는 길도 감수할 수 있다'는 그 양과 고(高)와 폭이 많고 깊고 넓게 될 때는,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은 중심적인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 앞에 주관받는 것 이상이 없다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디 그런 말이 있어? 세상에 사내로 태어나서 누구한테 지배받는 것처럼 억울하고 분한 것이 없는데,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자기를 진정 위해 줄 수 있는 그분 앞에 영원히 주관받을 수 있다면 행복이예요. 행복이라구요. 주관을 받는 것은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 앞에 주관받는 아들이 불행한 아들이냐? 아니올시다. 완전히 주관받고 난 후에는 완전히 주관하는 원칙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주고받는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효자 앞에는, '아버지. 나는 이걸 원하는데 아버지는 좋아요? 라고 말하면 그건 응해주게 돼 있습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주체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 앞에 주관 받는 그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게 된다면 하나님은 천지의 대 중심존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가까이 가기를 누구든지 원하게 됩니다. 그분 앞에 주관받고, 그분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이 천년 만년 소원이요, 그 자리는 천년 만년 감사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오로지 위할 수 있는 원칙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정치철학 가운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해소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따르게 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완전통일의 결과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한 가지 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소? 라고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야, 야, 인간 너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은 네 사랑이 아니야, 이상이라는 것도 네 이상이 아니야. 사랑이란 공동 소유물이요, 이상도 공동적인 터전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터전은 어떠한 터전이냐? 스스로를 위하고 자기를 섬기라는 터전이 아닙니다. 위하는 터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보다도 고귀한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면 남자면 남자로부터 오는 게 아닙니다. 혼자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혼자 이상이 있을 수 있어요? 암만 꺼떡대 보라구요. 사랑이 어디에서 오느냐? '그건 내게서 오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자기가 아무리 세계에서 유명한 노벨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하 나 혼자 있어도 사랑이야. 하하 혼자 있어도 이상이야'라고 하는 사람은 미친 녀석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오느냐? 상대를 통해서 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이거예요. 사랑은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어요.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보다 고귀한 사랑과 이상이 상대로부터 오는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모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위하는 입장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이것은 고마운 말씀입니다. 이 우주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그러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와 같은 존재의 원칙을 따라서 우주의 이상권을 실현시켰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