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상적 존재물은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서만 성립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7권 PDF전문보기

모든 이상적 존재물은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서만 성립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듯이, 하나님의 본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아 인간도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했더라면 여기에서 이상세계의 실현이 가능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사람 자체를 중심삼고 주체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타락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의 공식적 결론을 내린 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 모든 이상적 창조물, 모든 이상적 존재물은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서만 성립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보자구요. 어떤 부모가 태어나길 자식을 위해 태어나, 살기를 자식을 위해서 살다가, 죽기를 자식을 위해서 죽은 부모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들에게 있어서 참된 사랑의 부모요. 참된 이상의 부모요. 참된 행복의 부모이며, 참된 평화의 주체적인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효자가 어디에 있느냐?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태어나고, 살기를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살며, 죽기를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 죽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효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해서 태어나, 위해서 살다가, 위해서 죽는 아들딸을 대해 효자 효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박수)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서울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참석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만, 먼저 남자를 두고 볼 때, 도대체 왜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왜 태어나기는 왜 태어나, 남자인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지,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 났지' 이것은 원칙에 어긋납니다. 도대체 남자가 생겨나게 된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남자 자신을 위하는 것이 기원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여자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기분 나쁘더라도 할수없다 이거예요. 여자가 기원이 되어 가지고 남자가 생겨났다 하는 것을 오늘날 훌륭한 남자들은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청중 가운데 여자들은 입이 헤벌어져 가지고 좋아합니다. '아이구' 기분 좋아하지만 여자들 거 기분 좋아하지 말라구요. 얼굴이 얌전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좋은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은 누구 때문에 그래요? 자기 때문에 하는 여자가 있어요? 여자가 아무리 화장을 잘했더라도 여자가 밀릴 정도로 한 100명쯤 있는 자리에서 그 여자에게 '아이구 당신 화장한 거 참 좋소!' 하면서 두 사람, 세 사람 계속해서 그렇게 칭찬하게 되면 기분 나쁠 거라구요.

그러나 훌륭한 남자들이 '하, 참 아름답다'고 하게 되면 입이 벌어져 가지고 마음이 들뜹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래요」 거 그렇다구요. 이 여자라는 분들은 태어나기를 여자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 때문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존재의 기원은 남자를 위하여, 그래서 태어난 여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서로 위하여 존재하는데도 불구 하고 자기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그러면 이상적인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냐 묻게 될 때, 언제나 자기만을 위하라는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예요?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태어나기를 '아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할 때 여자가 만족해요. 안 해요? 흐뭇해 가지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거예요. 또, 사는 데도 '나는 당신을 위해서 삽니다' 이래야지 '5퍼센트는 나를 위해 살고 95퍼센트는 당신을 위해 산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런 사람보다 100퍼센트 이상을 당신을 위해 산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박수) 그건 그렇다구요.

남자의 골격을 봐도 그렇다구요. 아 이건 덩치가, 왜 어깨가 그렇게 커요? 이건 미식축구 챔피온 모양으로 이렇게 크다구요. 그 다음에 여자는왜 이렇게 궁둥이가 커요? 여기 서울의 지하철이 만원이 되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만, 뉴욕 같은 곳에 가서 초만원된 지하철 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의자에 앉을 때 어깨가 넓은 남자가 앉은 옆에 쓱 남자가 앉으면 그 사이에 이마만한 구멍이 생깁니다. 그러나 거기에 궁둥이가 큰 여자가 앉으면 딱 들어맞는다. 이거예요. (박수) 이것을 보더라도 서로서로 위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연적 요건의 구조가 갖추어져 존재한 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남편, 참된 부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 그것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아내를 위해 태어나, 아내를 위해 살다가, 아내를 위하여 죽겠다고 하는 자리에서만이 '아! 이상적인 남편이요. 영원불변한 나의 사랑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남편을 가진 아내는 '나는 행복한 부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가정이 평화의 가정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남편을 가진 여자는 불행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우주 창조의 기원으로 설정하신 지체의 왕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높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박수)

형제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제를 바라느냐? 형제 끼리 다투며 '아, 오빠는 나만을 위하라'고 하는 형제를 원하지 않는다구요. 서로서로 위할 수 있는 형제, 도리어 부모는 자녀들이 자기를 위해 주는 것보다도 형제끼리 더욱 위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모의 소원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형제는 자기를 중심삼고 위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위하려고 하는 형제 지간에 참된 형제와 사랑의 형제와 행복한 형제와 평화스러운 형제가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을 찾았습니다. 위하여 존재하는데서만이 참된 사랑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이상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행복이 시작될 수 있고 참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이 공식을 우리는 여기에서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이 이와 같은 우주 창조의 공식을 설정했다면, 이 공식을 통하여서만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도,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도, 하나님이 바라는 행복도,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외에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