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리아와 요셉과 형제들이 책임 못 한 것을 탕감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95권 PDF전문보기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과 형제들이 책임 못 한 것을 탕감해야

이제는 해야 할 것이 뭐냐면, 죽은 예수를 붙들지 말고 살아 있는 예수를 붙들고, 십자가에 돌아가는 예수를 붙들지 말고 어린 아기 예수를 붙들고, 복중에 있는 예수를 붙들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돼야 됩니다. 여자들은 '예수를 밴 마리아가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알았으니 마리아 이상 내가 해야 된다' 하며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의 심정과 전통적인 모든 것이 상실되지 않게 어떤 희생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본연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책임 못 한 요셉의 입장을 대신하고,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그의 친구의 자리에서 그를 위로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발견하고 그렇게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절대 예수가 모른다 할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모른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난그렇게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예수에게는 그때에 서로 사랑하고 싶은, 그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동생의 자리에서, 혹은 누이의 자리에서 그것을 동정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뜻을 품고 옳은 사랑을 하고, 옳은 길을 가는 젊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있거들랑 그를 예수와 같이 생각하고, 눈물어린 심정으로 동정해 줄 수 있는 누나가 되고, 동생이 되고, 형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겠다고 하며 그런 환경적인 놀음을 한다면, 그렇게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가 절대 모른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은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가지고 이 길을 가면서 그 억울함을 알듯이, 동생과 같은 사람, 누나와 같은 사람, 혹은 어린애들 같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려고 몸부림치게 되면, '얼마나 힘드냐? 참고 가자' 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이 통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방문해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예수의 자리에서 동생과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힘드냐' 할 때 '아닙니다 형님, 나는 힘들지 않아요. 형님이 얼마나 힘드십니까?' 이렇게 서로 위로할 수 있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연령이 된 사람이 있으면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이러고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니야, 나보다도 네가 더 힘들었지' 이렇게 위로할 수 있는 그 환경이야말로 천국건설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레버런 문이 통일교회를 만들었는데, 통일교회 교인들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이냐? 어디로 끌어내야 될 것이냐? 놀고 편안하고 잘사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비참하지만 예수의 친구가 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리로 몰아내겠다는 것입니다. 어때요?「좋습니다」그게 좋아요?「예」그게 왜 좋으냐 이거예요, 왜?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고, 예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의 한을 풀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리 복을 오라고 해도 복이 올 수 없지 않느냐.

그러면 십자가에 돌아가기 전의 예수가 나타나서 틀림없이 여러분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형제 이상의 형제요,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식구가 된다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요?「예」어떻게 돼서? 2천 년 전의 예수님과 여러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사랑, 사랑, 사랑의 마음은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거리에서 쫓기고 몰리고 욕먹고 핍박받고 침 뱉음 당하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래요,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래요? 누구를 위해서 그래요?「세계와 하나님을 위해서요」그렇다구요. 역사시대 지난날의 모든 것과 내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사탄이 참소하던 입장에서 볼 때, '내 옆에는 사탄이 있을 수 없다. 나에게는 하나님만이 있다. 사탄이 아무리 그러더라도 사탄이 나를 참소할 조건이 없다' 이렇게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유대 나라를 하나 만들려고 했지만, 우리는 세계를 하나 만들려고 한다구요. 거 왜 그래야 돼요? 왜? 예수가 살아서 나라와 세계까지 이루었어야 할 그 일을 내가 대신 이어받아 가지고 실천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살아있다고 해야 됩니다. 예수는 한 교파 유대교와 한 민족 이스라엘 나라에서 몰려 가지고 로마한테 죽어갔지만, 우리는 한 교파가 아니라 수백 교파와 수백 민족에게 몰리더라도 죽지 않을 것이고, 오늘날 공산당 이상의 강력한 그 무엇이 반대해도 나는 간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예수시대에 수많은 나라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 나라와 싸워서 승리한 사람의 부활체요, 이 세계를 대해서 책임한, 재림의 역사의 목적을 이어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싸우던 예수와 앞으로 이 세계를 위해 싸우려는, 재림시대를 대표한 나다, 그 뜻을 이어받고, 상속받기 위한 나다 이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가 갔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충과 우리가 당하는 억울함과 우리가 당하는 비참함은 체험 못 했다 이겁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와 레버런 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도 처음 당하는 일입니다. 알겠어요?「예」이런 자리에 있더라도,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갈 때 핍박받던 열두 제자와 같은 자리에 서더라도 우리들이 당당히 가게 된다면, 이 시대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재촉합니다. 이 말이 그럴 듯하지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