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는 예수의 사정과 하나되기 위해 희생의 길을 가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95권 PDF전문보기

신앙자는 예수의 사정과 하나되기 위해 희생의 길을 가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시대에 예수의 난 날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이 있었으며, 어떤 나라, 어떤 교회, 어떤 목사, 어떤 선각자가 예수의 난 날을 진정한 의미에서 축하했느냐? 예수가 비참하게 살았기 때문에, 비참한 자리가 아닌 왕자의 입장에 들어가 가지고 어떠한 위로를 한다 하더라도 그건 위로가 되지 않고, 예수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서 살면서 위로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빵을 갖다 주고 한 벌의 옷을 갖다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축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자, 여기 모인 사람은 뭘하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팔아 장사하자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통해 복을 받자는 사람이예요, 예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자는 사람이예요? 어떤 거예요?「희생하자는 사람입니다」그래, 또 이게 뭘하는 교회예요? 무슨 교회예요? 뭘하자는 거예요?「희생…」그래 희생하자는 목적이 뭐예요? 예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 만들자, 하나 만들어서 예수의 목적을 이루자? 그것보다 더 크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되는 데 있어서 '예수의 좋은 것과만 하나되지, 예수의 나쁜 건 싫어' 이런 말인가요? 어디서부터 먼저 하나되자는 거예요? 예수의 어느 때서부터 하나되자는 거예요? 십자가를 진 후부터예요, 지기 전부터예요?「지기 전입니다」선생님이 말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락 전에 있어서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기쁜 날을 축하하고, 즐거운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같은 자리에서 전부 다 출발하고, 같은 자리에서 축하하고,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울고 불고 하며, 그렇게 하나되어서 세계기반까지 하나될 수 있었던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하나 만들자는 패들입니다. 그렇다는 말이지요?「예」 정말 그래요?「예」

예수 당시에 예수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때, 그 유대인들은 전부 다 반대했는데 이방 종들 중에 흑인이 있어 가지고 예수의 사정을 알고 위로했다면, 친구는 누굴까요? 어떤 사람이겠어요?「흑인」정말이예요? 「예」왜? 마음이예요, 마음. 예수는 그때로 말하게 되면 유대 사람인데, 검은 종을 대해서 '전통적으로 볼 때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너는 뭐다, 이놈아' 이러겠어요, 붙안고 같이 울겠어요? 어떻게 했을까요?「울었을 것입니다」교파를 초월하고, 전통을 초월하고, 습관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할 수 있는 심정권이 거기서 생겨나는 걸 알아야 돼요.

어떻게 그렇게 하나될 수 있을까요? 그 자리가, 요즘 같으면 귀빈들을 모아 놓고 스테이크를 놓고, 좋은 왈츠곡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는, 한 잔 먹는 자리, 그런 자리예요, 비참한 자리예요? 웃는 자리예요, 우는 자리예요? 어떤 자리예요?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취할래요? 첫번째예요, 두번째예요? 어떤 걸 취할래요?「두번째요」두번째? 왜? 어째서? 어째서? 예수가 그렇고 하나님이 그러니, 제일 가치 있는 분이 그렇기 때문에 그분과 가장 가까이 친하려니 난 그런다, 그게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이거예요. 그래요?「예」

그래서 레버런 문도 하나님과 예수의 친구가 되고, 믿음직한 내가 되고, 총애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쫓기고 몰리는 자리에 서면 설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세계가 멀어지고, 자기 조국이 멀어지고, 자기 가정이 멀어지고, 자기 아내와 아들딸이 멀어지더라도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레버런 문을 따르는 사람들을, 여러분을 그런 길로 내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찬성해요?「예」레버런 문 따르기가 힘들고 통일교회 믿기가 힘들지만 한 가지 복된 것이 뭐냐 하면, 예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귀한 것입니다.

예수가 어머니 아버지한테 배반을 당해 봤고, 서러움을 당해 봤고, 형제들한테 그렇게 당해 봤고, 혹은 자기 종족과 자기 민족과 자기 교회한테 그렇게 당해 봤기 때문에, 나도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길, 지금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길에서 그런 길을 가겠다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길을 찾아갑니다. 그런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본래의 진정한 신앙길을 가자는 사람들의 소원인데 통일교회 교인들도 지금 자기도 모르게 그런 자리에 몰려들었다 이거예요.